1970년대 미중 해빙기에 양국 지도자의 통역사로 활동한 중국의 원로 외교관 지차오주(冀朝鑄·91·사진) 전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달 29일 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무역전쟁 등으로 미중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핑퐁 외교’의 주역 중 한 명인 그가 숨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시선이 많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1929년 산시(山西)성에서 출생한 그는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성장했다. 하버드대 화학과를 다니다 핵폭탄을 개발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며 귀국했고 6·25전쟁 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그의 영어 실력을 눈여겨본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보좌관 겸 통역으로 발탁했다.
그는 1971년 당시 헨리 키신저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저우 총리의 비밀 회동 때 통역을 맡았다. 이 회담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및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과의 정상회담, 1979년 당시 부총리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 및 역사적 미중 수교로 이어졌다. 지 전 차장은 이때 모두 통역사로 활동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두고 “미묘한 외교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중국 붉은 장벽의 제1통역사’로도 불린 그는 2008년 회고록도 출간했다.
중국의 국제 문제 평론가 팡중잉(龐中英)은 SCMP에 “위기의 시대에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인물”이라며 “최근 미중 관계 악화로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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