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방역 성공에 방심하다가… 서유럽서 ‘피난’ 귀국자 통제못해
10일째 하루 1만명 이상 신규확진… 확진자 23만명… 英 넘어 세계 3위
치명률 0.91% 통계 의혹도 확산… 러 연구원 “사망 3배이상 될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초기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던 러시아에서 환자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면서 세계 3위의 감염자 보유국이 됐다. 젊은 무증상자의 2차 전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정부가 초기 방역의 성과에 자만하다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3만2243명으로 미국과 스페인 다음으로 많다. 11일 하루에만 1만1656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고, 12일에도 1만 명이 넘는 환자가 나왔다. 스페인은 증가세가 주춤해 이번 주 내 러시아가 세계 2위 감염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인구 1억4000만 명의 러시아는 세계 9위의 인구 대국이다. 첫 확진자가 나오기 전인 1월 30일 일찌감치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했고 확진자가 격리 규칙을 어기면 최대 7년형에 처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던 3월 30일 러시아의 확진자는 1836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초반에는 코로나19를 억제했다. 하지만 4월 초부터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같은 달 19일 처음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가 6000명을 넘었다. 이달 3일부터는 신규 확진자가 하루 1만 명 이상 증가하고 있다.
뒤늦은 확산의 원인으로 젊은 무증상자의 2차 전파가 꼽힌다. 러시아 코로나대책본부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신규 환자의 45%가 무증상 환자였다. 또 전체 환자의 약 85%가 65세 이하이고 44%는 18∼45세였다. 타스통신은 코로나19의 확산을 피해 3월부터 서유럽에서 귀국한 러시아인들이 2차 감염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달부터 하루 10만 건으로 검사를 늘린 것도 확진자 통계 증가의 한 원인이 됐다.
정부의 자만심이 코로나19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감을 누그러뜨렸다는 비판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3월 22일 이탈리아에 러시아 의료진을 파견하는 여유를 보였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곧 바이러스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일각에서는 올 초부터 이미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졌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러시아 내 폐렴 환자는 전년 동기보다 37% 증가한 7000여 명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가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급증한 확진자에 비해 낮은 사망자 수에 대한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의 코로나19 사망자는 2116명에 불과해 치명률은 0.91%에 그쳤다. 영국(14.4%), 이탈리아(13.9%)와 대조적이다.
4월 러시아 최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망자는 지난 5년 평균보다 2073명 많았다. 이 중 코로나19 사망자는 629명에 불과했다. 다른 이유로 사망한 1444명 중 상당수도 코로나19로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대통령실 산하 국가경제행정 아카데미(RANEPA) 타티아나 미카일로바 선임연구원은 “사망자가 공식 집계치보다 3배 이상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푸틴 정권은 경기 침체를 이유로 12일부터 봉쇄 완화를 단행하기로 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트위터에 “확진자 증가 신기록을 세운 날 격리 조치를 끝내기로 했다”며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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