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남중국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격화되고 있는 ‘미중 신(新)냉전 시대’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이들 지역에서 최근 미중 간 군사 움직임이 부쩍 증가하면서 우발적 충돌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만 쯔유(自由)시보에 따르면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미군 B-1B 랜서 초음속 전략 폭격기 2대가 14일 대만 동부 해역 상공에 출격했다. 민간항공 추적사이트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12일에도 B-1B 랜서 2대가 동중국해까지 진출했다. B-1B는 1, 4, 6, 8일을 포함해 이달에만 6차례 대만 동쪽 해역까지 비행했다. 미국 군사 전문 온라인 매체 브레이킹디펜스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에는 B-1B 2대가 남중국해까지 날아갔다.
후시진(胡錫進) 중국 환추(環球)시보 편집장은 8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 압박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의 핵무기를 1000개까지 늘려야 한다며 대만과 남중국해 갈등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이 전 (군사) 역량을 동원해 중국을 억누르려고 할 때, 미국은 과거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심각한 군사 대치가 일어나 첫 발포를 할 때 양국 간 핵역량 차이가 머릿속에 번쩍 떠오를 것이다. 물러서지 않는 양측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핵 방패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10월 옛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사건이다. 미중 갈등을 미소 냉전 당시의 핵 위기에 빗댄 것은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그만큼 양측의 군사 긴장도가 높아졌음을 뜻한다. ○ 코로나 이후 미중 신냉전 화약고
중국은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의 ‘핵심 이익’으로 여긴다. 그러나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만의 독립 노선을 지향해온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이 강조해온 ‘하나의 중국’(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취지) 정책을 흔들고 있다. 미국은 또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은 최근 양측이 경쟁하듯 무력시위를 벌이며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코로나19 상황을 틈타 남중국해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며 군사 활동을 크게 늘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 군용기가 올해에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해협, 서해 등에서 39차례나 비행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를 넘는다. 특히 미 군용기는 홍콩에도 2차례 접근해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중국 영토에 미 군용기가 근접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쯔유(自由)시보에 따르면 미군 정찰기와 대잠수함 순찰기가 3월에만 대만 주변 해역과 남중국해 상공에서 11번 비행했다. 지난달에는 정찰기 출현 횟수가 13차례로 늘어났고 지난달 말부터는 B-1B가 등장했다. 쯔유시보는 “B-1B는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최신예 수단”이라며 “앞으로 더 자주 (대만 남중국해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교도통신은 12일 중국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대만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남중국해 둥사(東沙) 군도를 침공해 점령하는 시나리오의 대규모 상륙공격 군사훈련을 중국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중국 남부전구(戰區)는 해병대, 상륙함, 공기부양정을 대규모로 동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SNS에서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하는 상황을 이용해 대만을 무력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퍼졌다. 미군이 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가동해온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니미츠함, 로널드 레이건함, 칼 빈슨함 등 4척 모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작전을 중단하면서 전력에 차질이 생긴 틈을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로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려 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드루 톰프슨 전 미국 국방부 중국 담당 국장은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중국이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미국은 (코로나19로) 계속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이 약해졌다’고 인식하는 오산의 위험이 더욱 커졌다”고 주장했다. ○ 중간선 넘으며 ‘일촉즉발’ 위기
중국은 자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던 2월 초부터 전투기와 폭격기를 대만에 보냈다. 전투기 젠(殲·J)-11, 공중 경보기 쿵징(空警·KJ)-500, 폭격기 훙(轟·H)-6이 2월 9, 10일 대만해협의 중국과 대만 간 중간선을 넘어 대만 지역으로 진입했다. 대만 공군이 F-16을 출격시켜 긴급 대응에 나섰다. 중국은 3월 중순에는 심야에 J-11과 KJ-500을 대만 서남쪽 해역으로 보냈다. 3월 말에도 조기경보기와 전투기들이 36시간 장기 체공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대만 주변 해역을 비행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이 이끄는 항모전단 6척이 대만 동북부를 통과해 남중국해까지 가서 훈련을 벌인 뒤 다시 대만 동북부를 지나 북상했다.
미국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2월 중국 군용기들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은 이후 미군 B-52 전략폭격기와 MC-130J 특수작전기가 대만 주변에서 훈련을 벌였다. 당시 클라크 쿠퍼 미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중국 군용기의 중간선 월경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 미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지난달 10, 11일에는 미군의 이지스 미사일 구축함 배리함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중국 쪽 해역으로 진입했다. 이달 14일에는 이지스 미사일 구축함 매캠벨함이 대만해협을 항행했다. 3월 25일에도 매캠벨함이 대만해협을 북상해 지났다. 2월 15일에는 이지스 순양함 챈슬러즈빌함이 대만해협을 지났다.
물론 미중 간 군사 전력 차이를 고려할 때 중국이 당장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의 강경파로 알려진 퇴역 공군 대장 차오량(喬良) 중국 국방대 교수도 최근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되찾으려면 모든 자원과 힘을 동원해야 해 대가가 너무 크다. 미국이 코로나19로 무너지지 않는 한 지금은 무력으로 대만을 되찾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 대만 WHO 참여 놓고 진영 대결 양상까지
대만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으로 떠오르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당장 18, 19일 열리는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대만을 옵서버로 참여시키려는 미국과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중국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19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대만은 유엔 회원국 자격을 잃었다. 이후 대만은 중국의 압력으로 유엔 산하 기구들에서도 축출됐다. WHO의 경우 중국 대만 간 양안 관계가 개선된 2009∼2016년 옵서버로 참여했지만 차이 총통이 집권한 2016년 옵서버 자격을 잃었다.
대만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은 대만의 WHO 총회 참가를 밀어붙이고 있다. 12일에는 미국 상원이 대만의 WHO 총회 참가 지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미국의 동맹들이 ‘WHO가 대만에 옵서버 자격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진영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은 발끈하고 있다.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이 대만의 WHO 총회 참여 지지를 표시하자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과 뉴질랜드 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잘못된 발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국가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들은 대만의 WHO 참가를 지지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중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대학원 후티앙분 교수는 SCMP에 “기본적으로 편을 선택하는 문제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문제가 있는 아세안 국가들이 대만 문제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항행의 자유” vs “풍파 일으키지 말라”
미 해군 군함들은 올해 1∼4월 ‘항행의 자유’ 작전을 4차례 벌였다. 항행의 자유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섬들에 미군 함정들이 접근하는 작전을 가리킨다. 미군이 지난해 한 해 동안 8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인 것에 비해 올해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군은 남중국해 말레이시아 인근 해역의 말레이시아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 주변으로 군함들을 보내고 있다. 7일에는 연안 전투함 몽고메리함 등 2척이 투입됐고 이후 연안 전투함 개브리엘 기퍼즈함이 추가 파견됐다. 지난달 중국 지질탐사선 하이양디즈(海洋地質) 8호가 이 시추선 인근에 접근해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존 아퀼리노 미국 태평양함대사령관은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괴롭힘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하이양디즈 견제를 위해 미군 미사일 순양함 벙커힐과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이 웨스트 카펠라 인근 해역에서 항해했다. 중국 외교부는 “역외국은 풍파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벙커힐은 지난달 29일에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 군도)를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미군은 지난달 28일에는 이지스 구축함 배리함을 파라셀 제도(시사·西沙 군도)에 보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했다. 중국군이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영해로 불법 침입했다”며 배리함을 몰아내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지난달 18일에는 남중국해 매클스필드 제도(중사·中沙 군도)와 스프래틀리 제도 사이 해역에 진입한 아메리카함 주변에 최소 군함 8척이 나타나 포위하는 듯한 위성사진이 공개됐다.
중국군은 이에 대응해 이달 초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두 번째 항공모함이자 첫 국산 항모인 산둥(山東)함 탑재 전투기와 구축함, 호위함 등이 참가한 해상 실탄 훈련 등을 연이어 벌였다. 산둥함은 남중국해에 접한 중국 남부 하이난(海南)이 기항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이 훈련이 “미국이 항공모함 운항을 재개해도 미국의 남중국해 도발에 중국이 대비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달 남중국해에 자국 관할의 행정구역을 신설하고 남중국해 섬, 암초, 해구 55곳에 중국식 공식 지명을 붙이는 등 영토 편입 조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글로벌타임스에 “미중 두 강대국 간 전략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만, 남중국해, 한반도가 잠재적 갈등 지역으로 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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