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의 개막일인 21일에 맞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을 거명한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공개하며 선전포고를 했다. 1979년 양국 수교 후 41년간 지켜왔던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기조를 완전히 폐기하고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정책 종합판’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부실 대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을 야기했다며 중국 공격을 핵심 대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담긴 주요 내용이 11월 대선 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상당 기간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 “일대일로 앞세운 中 약탈경제 좌시 안 해”
미국이 20일(현지 시간) 공개한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의 후속판이다. 당시에는 전 세계를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에만 집중했다.
보고서는 시 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해 온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약탈적 경제정책의 사례로 지목하며 이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선 중국이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필리핀 등에 대한 무역·관광 제한정책을 통해 정치·군사력 확대를 모색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정보통신, 에너지, 인프라, 미디어, 과학 등 거의 전 산업 분야를 일대일로에 동원해 내수경제 발전과 세계 시장에서의 중국 표준 확산 등을 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타국의 기밀정보를 빼돌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와 ZTE를 언급하며 “다른 나라와 외국 기업에 안보 취약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세계 정보통신업계를 장악하려 한다고도 지적했다. ‘중국 정부’ 대신 ‘중국공산당(CCP·Chinese Communist Party)’이란 표현을 35차례 사용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성숙한 경제를 자처하면서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등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 기업에 불공정한 혜택을 부여할 뿐 아니라 온라인상의 절도 행위를 통해 전 세계에 수천억 달러의 손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 ‘동맹 연대’ 거론하며 한국 포함
보고서는 중국 문제에 대응하는 데 동맹국과 긴밀히 연대하겠다며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대만 등 5개국을 핵심 동맹으로 거론했다. 동맹(allies, alliance)을 지칭하는 단어는 18번, 파트너(partners, partnership)를 뜻하는 단어는 24번 썼다.
2017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대일로에 대응하겠다며 발표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비전’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이어 인도의 ‘역내 모두를 위한 안보와 성장정책’, 호주의 ‘인도태평양 구상’,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한국의 ‘신남방정책’, 대만 ‘신남방대정책’ 순으로 열거하며 한국을 반중 동맹 그룹에 묶어 놓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5개국에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월리스 그레그슨 전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중국의 군사 활동 증가에 대해 한국의 인도태평양 역할 확대를 바라는 미국의 기대가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기존 체제를 대신할 새 체제를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러시아와 만나 2021년 2월 만료되는 신(新)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대체할 새로운 핵 군축 조약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조약에 중국을 참여시키기 위해 외교 및 경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 위구르·티베트 등 인권탄압 지적
보고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에 관해서는 강한 비공식 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이 계속 무력 증강을 시도하면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신장위구르 지역의 무슬림 탄압, 티베트 독립운동 억제, 파룬궁 탄압 등 인권탄압 문제도 적시했다. 중국이 늘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외치는 민감한 내부갈등 문제를 일일이 거론하며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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