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논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미국과 거세게 대립하고 있는 중국이 환율 및 세계 최대 내수시장이란 경제 무기를 앞세워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늘릴 수 있는 환율 카드를 꺼냄에 따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양국 경제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경제계 인사들과 만나 “국내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아 완전한 내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과학기술 등의 혁신을 전력 추진하고 더 많은 성장 지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시장의 우위를 이용해 국제 시장의 위험을 없애야 한다. 국내와 국제의 쌍순환을 촉진하는 발전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립 기술 및 시장을 강조하며 디지털경제, 스마트제조업, 건강·생명과학, 신소재 등도 언급했다. “수중에 식량이 있으면 당황할 일이 없다”며 식량 자급도 강조했다.
이를 놓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중국이 코로나19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서방 전체와의 관계 단절 등에 대비해 그간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이 아닌 국내 시장 개척에 초점을 맞춘 새 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199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줄곧 유지해온 ‘세계의 공장’ 전략, 즉 수출주도형 체제 대신 인구 14억 명의 세계 최대 내수시장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려 한다는 의미다.
중국은 대규모 수출을 기반으로 한때 매년 8% 이상의 고성장을 구가하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미중 관계단절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로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자력갱생을 추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양국이 무역전쟁을 벌일 때도 거듭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또 25일 2008년 2월 후 12년 최고치를 기록한 미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26일 또 최고점을 경신했다.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위안화 고시 환율을 전일대비 0.0084위안(0.12%) 높은 7.1293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날 고시 환율은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7.1286위안)보다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인위적인 위안화 약세를 조장해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줄곧 시정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가 올해 1월 1단계 무역협상을 합의하면서 해제했다. 위안화 환율이 연 이틀 최고점을 경신하면서 미국이 다시 조작국 지정이란 칼을 뽑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제 전쟁이 거세지면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稀土類) 수출 제한 카드도 꺼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는 란타넘(La), 세륨(Ce) 등 17개 원소를 가리킨다. 반도체, 스마트폰, 전기차, 위성, 레이저 등 첨단 제품과 무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80%를 보유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5일 “미국의 지속적인 자급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공분야는 물론 민간에서도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미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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