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령 지키느라 모친 임종 못한 네덜란드 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7일 03시 00분


요양원 96세 노모 ‘위중’ 소식에도
집단시설 방문 금지돼 찾지 못해… “어머니께 감사… 모두 평화 찾길”
각국 정치인 규정위반 구설속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켰다’ 평가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53·사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을 지키느라 모친의 임종을 놓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방역 지침을 어겨 물의를 빚은 영국, 오스트리아, 미국, 브라질 등의 지도자와 대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켰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뤼터 총리의 모친인 미커 뤼터딜링 여사(96)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고령인 그는 이달 초 건강 상태가 악화돼 임종이 가까워졌다. 이달 13일 뤼터딜링 여사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뤼터 총리는 임종을 못했다. 개인이 요양원 등 집단시설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봉쇄령 때문이다.

뤼터 총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며 작별을 고한다. 모든 이들이 평화롭길 희망한다”고 했다. 총리실 측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규정을 총리가 준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정부는 요양원 등 집단시설 봉쇄 조치를 이날 일부 완화한 데 이어 다음 달 15일 완전히 해제할 방침이다. 헤이그 출신인 뤼터 총리는 청년 시절 우파 성향의 자유민주국민당(VVD)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2006년 당 대표에 올랐고 2010년 총선에서 VVD 소속으로는 92년 만에 총리로 취임해 10년째 재임 중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증세를 보인 도미닉 커밍스 총리실 수석보좌관(49)이 자가 격리를 어기고 400km를 이동한 사실이 드러나 사퇴 요구가 커지고 있다. 커밍스 보좌관은 “4세 아들의 돌봄 때문에 더럼의 부모 집을 방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는 당시 일대 관광지도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커밍스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증상으로 시력이 나빠져 격리 후 복귀 시 런던까지 운전을 할 수 있을지 시험 삼아 차를 몰아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더글러스 로스 영국 스코틀랜드 담당 정무차관은 26일 “정부 지침으로 아픈 가족을 방문하지 못한 시민도 많다”며 정부 관료를 대표해 차관직을 사임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24일 봉쇄령을 어기고 밤 12시가 넘도록 수도 빈의 한 식당에 머물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도 24일 더블린 내 공원에서 산책을 즐겨 ‘공공장소에서 오래 머물지 말라’는 정부 지침을 어긴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충일 연휴인 23, 24일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한 골프장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방문해 ‘방역 무시’ 논란을 빚었다.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역시 23일 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브라질리아 시내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먹는 모습이 노출돼 구설에 올랐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네덜란드#마르크 뤼터 총리#코로나19#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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