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자금줄’ 조선무역은행 타깃, 대북제재 위반 최대규모 기소
14개 혐의 적용… 공소장도 공개
北 핵강화-中 제재회피 동시 경고
미국이 약 3조 원 규모의 돈세탁 등에 관여한 혐의로 북한 조선무역은행(FTB) 전 총재 등 북한인 28명과 중국인 5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미국이 기소한 북한의 제재 위반 사건 중 최대 규모라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전했다.
미 법무부는 29일(현지 시간) 이 33명이 중국 베이징과 선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리비아, 태국, 오스트리아, 쿠웨이트 등지에 위장 회사 250여 곳과 FTB 비밀 지점을 세운 뒤 미 금융 체계를 이용해 25억 달러(약 3조1000억 원)의 돈세탁을 시도하고 불법 거래에 관여했다는 50쪽 분량의 공소장을 공개했다.
주요 피의자는 FTB 전 총재 2명(고철만, 김성의), 전 부총재 2명(한웅, 라종남), 태국에서 FTB 비밀 지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한기성 등이다. 대북제재법,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제재법, 국제 돈세탁, 은행법 위반 등 14개 혐의가 적용됐다.
북한의 외환거래를 담당하는 FTB는 사실상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피의자들이 세탁한 자금이 WMD 개발 등에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가 중국 인사까지 기소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미중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WP는 “이번 기소는 불법 행위에 가담한 중국의 역할을 보여준다. FTB 지점이 여전히 베이징과 선양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소된 인사들은 모두 미국 밖에 체류해 이들을 송환해 미 법정에 세울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나선 것은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최대한 압박하려는 미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비핵화 협상 대신 핵무력 강화를 주장하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을 놓고 격렬히 대립하는 중국에도 대북 제재를 이행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가 피고인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도 적성국 정부를 막기 위해 외국인들을 종종 기소한다”고 진단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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