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부터 “신분증 제시하라”…中 ‘톈안먼’ 추모 원천 봉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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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운데 4일로 31주년을 맞는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모를 원천 봉쇄하려는 중국 당국의 통제 강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미국은 톈안먼 사태 추모 불허를 비판하며 중국에 날을 세웠다.

3일 베이징(北京) 톈안먼 광장 외곽 일대에서는 사복 공안(경찰)과 경찰견까지 등장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톈안먼동(東)지하철역에서부터 공안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톈안먼 광장 앞 보안검사를 위해 줄 서는 곳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신분증을 검사했다. 보안검사 때 또 다시 여권을 확인한 공안은 “모든 외국 기자는 사전 허가를 얻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며 기자를 돌려 세웠다. ‘취재 목적이 아니더라도 못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오늘은 안 된다”고 답했다.

광장 외부에서는 사복 경찰들이 행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지하철역 안에서도 경찰견이 순찰을 돌았다. 이날 광장을 찾은 한 중국인은 “광장 내에 관광객은 200여 명도 안 되는 듯 한산했지만 경찰은 40~50명이 광장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베이징 창핑(昌平)구에 있는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묘소 주변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울타리로 둘러싸였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에 반대하고 시위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실각해 가택연금에 처해진 뒤 2005년 사망했고, 14년 만인 지난해에야 유골 매장이 허용됐다.

당국은 공사를 이유로 울타리를 설치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공사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밍보는 지적했다. 울타리 안쪽에는 바깥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묘지 주차장에도 경찰 차량과 여러 명의 경찰이 배치돼 오가는 차량과 행인을 살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톈안먼 사태 희생자 유족들이 만든 톈안먼 어머니회는 올해 단체 추모가 어려워졌다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참배할 것이다. 참배하지 말라는 경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톈안먼 어머니회는 매년 희생자들이 묻힌 베이징 완안(萬安) 묘지를 찾아 왔다.

톈안먼 시위의 학생 지도자로 미국에 거주하는 왕단(王丹)은 4일 톈안먼 사태 31주년 온라인 화상 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 추모제에는 중국 당국이 대표적 반중 인사로 지목한 조슈아 웡 홍콩 데모시스토당 비서장도 참석해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홍콩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밤 열어온 톈안먼 사태 희생자 추도 촛불집회를 경찰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불허했다. 주최 측은 홍콩 시민들이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4일 오후 8시에 촛불을 켜고 1분 동안 추모하자고 밝혀 집회 금지 결정에 반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집회 불허는 홍콩인의 입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2일 미국에 거주하는 왕단, 쑤샤오캉(蘇曉康) 등 톈안먼 사태 주역들과도 만나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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