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7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5구의 한 레스토랑. 30여 명이 테라스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저녁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루 수백 명씩 사망하던 4월 상황은 이미 잊은 듯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유럽 각국은 봉쇄령 해제에 돌입했다. 프랑스 정부는 2일 봉쇄령 해제 2단계 조치로 카페, 식당의 영업금지령을 해제했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주요국도 봉쇄령을 해제하고 사회 정상화에 나섰다.
하지만 방역 전문가들은 긴장의 끈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고 경고한다. 2차 대유행에 대비해 중간 점검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역의 방향성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은 강력 봉쇄, 정밀 관리, 집단면역 등 크게 세 방향으로 대응해 왔다.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에 따라 피해 정도가 나뉘었고 각국의 방역 성적표도 달라졌다.
○ 스웨덴 집단면역 주도자 ‘실패’ 인정
세계적으로 논쟁이 뜨거웠던 방역 모델은 스웨덴의 ‘집단면역’이다. 전체 인구 중 일정 비율 이상이 감염돼 면역력을 가지게 되면 감염 속도가 늦어진다는 이론에 기반한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이동 제한, 상점 폐쇄, 휴교령 등 강도 높은 봉쇄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다. 상점은 그대로 문을 열었고 체육관 등 집단시설도 운영됐다. 50명 이상 모임을 금지하고 1m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은 실패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자료와 각국 인구수를 토대로 100만 명당 확진자를 분석한 결과 스웨덴은 4042명으로, 미국(5684명), 영국(4094명), 이탈리아(3862명) 못지않게 피해가 컸다. 100만 명당 사망자 역시 스웨덴(449명)은 세계 1위 감염국인 미국(326명)보다 많았다. 특히 사망자의 90%는 70세 이상으로 노인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집단면역의 효과도 의문시된다. 집단면역이 효과를 보려면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항체를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스웨덴은 전체 인구의 7.3%만 항체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집단면역에 성공하는 국가는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뉴욕(19.9%), 영국 런던(17.5%), 스페인 마드리드(11.3%)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한 주민 비율은 7∼20%에 불과하다”며 “집단면역에 성공하기 어렵고 성공한다 해도 방역이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집단면역 모델을 주도한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중보건국 역학담당도 3일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이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예상보다 일찍 사망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된다면 스웨덴 방식과 다른 국가 방식의 중간 지점에서 방역을 실시하겠다”고 토로했다.
방역 실패로 스웨덴은 국경 재개방을 앞둔 유럽국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됐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은 서로 이동 제한을 풀기로 했지만 스웨덴은 제외하기로 했다. 9일 일부 항공편을 재개하는 키프로스도 스웨덴에서 출발하는 직항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영국도 코로나19 확산 초기 집단면역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키웠다. 영국은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3월 중순까지 봉쇄령을 내리지 않았다. 감염자가 속출하고 26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뒤에야 황급히 봉쇄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대응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사망자가 4만 명 가까이 발생했다.
○ 강력 봉쇄 정책, 성적표 제각각
초기에 강력한 봉쇄 정책을 도입한 국가들의 성적표는 다양하다. 일찍이 국경을 봉쇄하고 확진자 및 접촉자의 동선을 면밀히 추적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코로나19가 처음 퍼진 국가인 중국은 초반에 은폐 의혹과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대규모 봉쇄와 이동 제한 등 강력한 정책을 펼치면서 감염 확산을 줄였다. 2월 8일 40%에 육박하던 신규 확진자 증가율이 강력한 봉쇄 정책을 도입한 같은 달 중순 이후에는 한 자릿수로 줄었다.
강력 봉쇄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첫 확진자가 나오기 전인 1월 30일 중국을 오가는 국경을 봉쇄했다. 러시아 의회는 3월 확진자가 격리 규칙을 어기면 최대 7년형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3월 19일까지 러시아 내 확진자는 200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말부터 확산세가 커져 4월 12일에는 하루 2558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5일 현재 러시아의 확진자는 44만9000여 명으로, 세계 3위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 확진자가 급증하자 3월 중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도 높은 봉쇄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4월에도 하루 수천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고, 1000명 가까이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전염병 전문의들에 따르면 감염병은 1, 2주 차이로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첫 확진자 발견 후 1, 2주가 지나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확산되면 아무리 강력한 봉쇄 정책을 시행해도 이전에 감염된 사람이 많아 피해가 급증한다는 설명이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첫 환자 발생 이후 2주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누적 확진자가 1만 명에 근접해서야 봉쇄령을 실시했다.
○ 정밀 추적, 대량 진단으로 성과 낸 K방역
한국과 대만은 대표적인 방역 모범국으로 꼽힌다.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 수는 한국 223명, 대만 18명이다.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도 각각 5명, 0.3명으로 이탈리아(554명), 스페인(680명)보다 훨씬 적다.
한국은 초기에 중국 국경을 봉쇄하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2월 4일 후베이성 입국자에 대해서만 입국을 금지했다. 상점을 폐쇄하거나 국내 이동을 제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속한 대량 진단으로 방역 모범국 대열에 합류했다. 드라이브스루 검진소를 도입해 진단율을 높였다. 여기에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적절한 치료, 감염자 추적, 접촉자 격리를 병행해 조기에 확산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드라이브스루 검진소와 감염자 동선 추적 애플리케이션 등 선진 시스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세계 각국은 한국 진단키트와 방역 물품, 그리고 방역 노하우에 러브콜을 보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역학조사, 확진자 추적, 접촉자 격리 등 방역 조치를 비교적 일찍 시작하면서 지역사회 감염을 낮은 단계에 머물게 한 것이 코로나 피해를 줄였다”고 밝혔다.
대만도 국내 이동 제한 조치 등은 취하지 않았지만 신속한 국경 봉쇄, 외국인 입국 금지, 해외에서 들어온 모든 대만인의 의무 검역 등 조치를 통해 초기 대응에 성공했다. 대만은 1월 22일 중국 우한발 입국을 막았고, 2월 6일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대만 입국 전 중국 본토를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도 막았다. 확진자 동선을 적극 추적하는 한편 마스크 확보 계획도 촘촘히 설계했다. 의료용 마스크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마스크 홀짝 구입제를 도입했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국가는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경험한 덕분에 선제적 대응이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는 시민의식도 체득할 수 있었다. 미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최근 “홍콩은 사스 때의 경험을 토대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활 속 방역 지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대만은 가장 먼저 중국 국적 시민의 입국을 금지했다. 사스의 교훈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개인 방역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확산세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염병 방치’ 남미·아프리카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남미가 팬데믹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역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코로나19 피해가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라질은 ‘방치’에 가까운 수준의 방역으로 피해를 키웠다. 브라질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4월 초 자국 내 확진자가 5000명, 사망자가 200명을 넘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중요하다. 일터로 돌아가라”고 국민을 독려했다. 이는 안일한 대응으로 이어지면서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주마다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해 의료 체계가 붕괴됐다. 가디언은 “코로나19 확산이 여전한데도 4000명이 목숨을 잃은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에는 서퍼들이 활동하고 상점이 열린다”며 브라질 방역 체계에 우려를 표시했다. 칠레 역시 수도 산티아고의 중환자실 90% 이상이 코로나19 환자로 채워질 정도로 피해가 크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남미는 인구 밀집도가 높고 개인위생 수준도 떨어지는 데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만한 경제 체력도 없기 때문에 피해가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 “2차 유행 대비 방역 시스템 구축해야”
감염병 전문가들은 ‘어떤 방역 모델이 성공했다’고 단정 짓기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한다. 단기적으로는 방역에 성공한 듯 보여도 언제든 재확산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달부터 서울 이태원 클럽, 경기 부천 쿠팡물류센터, 수도권 교회 모임 등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 재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봉쇄령 해제 후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뜻하는 재생산지수(R)가 높아졌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유럽과 미국 등 서방→남미와 아프리카’로 이어진 코로나19 확산 사이클이 지나가도 올겨울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2차 유행 규모가 1차 때보다 크다는 점이다. BBC 등에 따르면 스페인독감은 1918년 봄에 시작돼 가을, 겨울 세 차례에 걸쳐 유행했는데, 두 번째 파동 때 피해가 가장 컸다. 1957년 아시아독감 대유행 당시에도 10월 확산 후 소강기를 거쳐 이듬해 3월 최절정에 달하면서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역시 봄에 유행한 후 겨울에 더 큰 규모로 확산됐다.
감염 추적이 비교적 수월한 1차 유행과 달리 2차 파동은 바이러스가 복잡한 상황에서 증폭돼 피해가 더 크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겨울에 감기, 독감 등 다른 호흡기 질환이 코로나19와 동시에 유행하면 의료 시스템에 큰 무리가 올 것”이라며 “선제적 대비가 절실하다”고 했다.
역학조사, 감염자 추적 관리와 같은 기존 방역 체계를 정교화하면서 잠재된 감염 관리 시스템을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본 감시 체계를 구축해 지역사회 감염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 및 예측한 후 그에 맞춰 방역 대책을 세밀히 조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전국적으로 2만 명 정도 표본조사 감시 체계를 구축해 진단 검사나 항원항체 검사를 진행하면 전국 확산 규모를 예측할 수 있고, 2차 대유행에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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