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 끝에 미국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에 오른 조 바이든 전 부통령(78)이 가파른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현직 프리미엄’을 지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4)이 바이든을 비롯한 민주당 주요 후보군을 압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지난달 25일 백인 경관의 가혹 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 사건이 대선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의 선거 전략도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집권 후 미국의 분열이 극심해졌다며 ‘치유와 화합의 대통령(healer-in-chief)’이 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플로이드 사태 후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좌파로 몰아붙이는 이념 대결 전략에 치중하고 있다. 자신을 백악관 주인으로 만든 보수 백인 유권자, 즉 ‘집토끼’ 공략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다.
○ 반(反)트럼프 민심에 가려진 ‘샤이 트럼프’
최근 트럼프 재선 캠프는 하루에도 2, 3통씩 ‘졸린 조(sleepy Joe·바이든 후보를 낮춰 부르는 표현)를 이기기 위해 우리 모두 달려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애국자의 힘을 필요로 한다’와 같은 이메일을 발송하며 지지자 집결에 나섰다. 바이든 캠프의 월 후원금 목표액이 600만 달러(약 72억 원)임을 알리며 “우리는 그보다 많이 해야 한다”고도 독려한다.
역설적으로 이는 트럼프 캠프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6월 발표된 주요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후보가 마(魔)의 ‘지지율 50%’ 벽을 돌파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두 자릿수 이상 차이로 따돌린 탓이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잘난 백인 여자’ 이미지에 갇혀 지지율에서 트럼프 후보를 앞서면서도 한 번도 50%를 넘지 못했다. 그만큼 바이든 표심의 확장성이 있다는 의미다.
대선 결과를 좌우할 경합주 흐름도 바이든에게 유리하다. 폭스뉴스 CNBC방송 퀴니피액대의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미시간 플로리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6개 경합주에서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을 최대 8%포인트 차로 앞섰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불과 0.23%포인트 차로 클린턴 후보를 간신히 꺾은 미시간주의 7일 조사에서는 바이든 지지율이 트럼프보다 12%포인트나 높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 11월 3일 대선에서 바이든의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미 대선은 전국 지지율이 결정하는 직접 투표가 아니라 50개 주(州)별로 투표 결과에 따라 이긴 쪽에서 각 주에 배정된 총 538명의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간선제다.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쪽이 승리한다. 대부분의 주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해당 주의 투표에서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이런 이유로 4년 전 트럼프 후보가 전국 득표수에서는 클린턴 후보보다 2.1% 적었음에도 선거인단은 77명을 더 얻어 압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집토끼’ 공화당원을 잘 관리하고 있다. 이달 2∼5일 CNN과 여론조사회사 SSRS가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8%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공화당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무려 88%의 지지를 얻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담당한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 중에는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를 밝히진 않지만 투표장에선 몰표를 던진 고소득, 고학력 백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미국 경제와 일자리를 살리겠다”는 트럼프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한다.
양측 지지자의 성향 차이도 뚜렷하다. CNN-SSRS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의 70%는 “트럼프 자체를 지지해 그를 찍는다”고 답했다. “바이든을 막기 위해 투표한다”는 답은 27%에 불과했다.
반면 바이든 지지자의 60%는 “트럼프 재선을 막기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바이든을 위해 투표한다’는 답은 37%였다. 즉 현재 여론조사의 높은 바이든 지지율은 바이든 본인이 만든 것이라기보다 반트럼프 효과에 기인한 면이 크다. 열성적 팬덤이 선거 판세를 결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요소다.
9일 인터넷매체 복스는 바이든의 선거 전략이 지나치게 ‘반트럼프’에만 치중했으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자신만의 뚜렷한 비전 제시 없이 ‘트럼프 반대’만 외쳐서는 ‘샤이 트럼프’ 유권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 약한 존재감 키우며 흑인 결집 시도
대중 동원력이 부족하고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온 바이든 후보가 약한 존재감을 어떻게 부각시킬지도 관심이다. 무엇보다 플로이드 사망 후 트럼프 행정부를 극도로 비난하고 있는 흑인 유권자들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최대 관건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인구통계국 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억3000만 명의 미국인 중 비(非)히스패닉계 백인 비율은 60.7%, 흑인 비율은 13.4%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16년 대선에서 양측의 등록 유권자 역시 각각 1억9221만 명, 3061만 명으로 6배 이상 차이가 났다. 백인 남성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트럼프 측에 유리한 구조다. 미국 선거를 분석해 온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김동석 대표는 “등록 유권자만 기준으로 하면 백인 비율이 약 80%에 육박한다. 흑인 유권자가 결집해도 백인 지지가 두터운 후보를 꺾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진단했다.
흑인 유권자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지만 4년 전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은 20년 만의 최저치인 59.6%까지 떨어졌다. 2012년 대선에서는 4대 인종집단에서 가장 높은 66.2%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던졌지만 흑인 남성의 상당수가 클린턴에게 거부감을 느낀 것이 투표율 하락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같은 기간 백인 투표율은 1.2%포인트 상승했다. 흑인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이든 캠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경합주의 흑인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도 바이든에게 불리한 요소다. 미 50개 주 가운데 흑인 비율이 가장 높은 주는 미시시피(38.9%·선거인단 6명), 루이지애나(33.6%·8명), 조지아(33.2%·16명) 등이다. 이들은 선거인단 538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반면 핵심 승부처인 플로리다(17.5%·29명), 펜실베이니아(12.7%·20명), 오하이오(14.4%·18명), 미시간(15.2%·16명) 등은 흑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아이오와 등 6개 주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차지했지만 4년 전엔 공화당에 자리를 내준 지역이라 민주당 입장에서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에 배정된 선거인단만 99명이어서 이 6개 주 선거 결과가 백악관 주인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측은 최근 강도 높은 반트럼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는 6월 첫째 주에만 트럼프를 비판하는 페이스북 광고에 500만 달러를 썼다. 특히 플로이드 사망 규탄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4일 하루에만 이 중 160만 달러를 썼다.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 하루 단위 광고비로는 최대 규모라고 CNN은 분석했다.
○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 가능성
‘70대 후반의 백인 남성 기득권자’인 바이든이 자신의 약점을 상쇄해 줄 부통령 후보로 누구를 고를지 주목받고 있다.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뽑겠다고 밝힌 그는 8월 1일 전에 후보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복음주의 개신교도의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다시 한 번 파트너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초 민주당 내에서는 정치 성향으로는 진보층, 지역적으로는 중북부 유권자를 포섭하기 위해 각각 양측의 지지가 높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미네소타)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하지만 플로이드 사태로 흑인 표심이 중요해지면서 이제는 흑인 여성을 뽑자는 주장이 대세로 떠올랐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1984년, 2008년에 모두 백인 여성인 제럴딘 페라로 전 하원의원과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지만 집권에 실패했다.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 후보가 등장할지, 그가 바이든을 따라 백악관에 최종 입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후보군 중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56·캘리포니아)은 자메이카계 부친과 인도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지만 자신을 ‘흑인’으로 규정한다.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을 거쳐 2017년 1월 워싱턴 중앙 정계에 데뷔했다. 바이든 후보와 비슷한 중도 노선이라 진보 유권자를 포섭하기 어렵고 피부 색깔만 다를 뿐 성장 과정, 커리어, 이미지가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비슷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남성 유권자의 거부감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탄핵 과정 당시 하원의 탄핵 소추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목받은 밸 데밍스 하원의원(63·플로리다)은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다. 경비원 부친과 가사도우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27세에 말단 순경에서 시작해 올랜도 경찰국장에 올랐다. 다만 경찰국장 재직 시 과잉진압 의혹 등이 제기돼 공권력 남용에 분노하는 흑인 유권자에게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1월부터 조지아주 최대 도시 애틀랜타 시장으로 재직 중인 케이샤 보텀스 시장(50)은 인종차별 항의 시위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극좌파’라고 비난하자 “입을 다물라”고 맞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R&B 가수 메이저 랜스의 딸로 바이든의 대선후보 선출이 불투명했던 지난해 6월 일찌감치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워싱턴 중앙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약점이 있다.
변호사 출신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전 하원의원(47·조지아)은 지난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연단에 올라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세무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6년 하원의원으로 뽑혔고 각종 교육개혁 법안을 내놔 호평을 받았다. 2018년 11월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공화당의 브라이언 켐프 후보에게 약 7%포인트 차로 패했다. 개혁 성향이 강하고 신선한 이미지지만 현재 맡은 직함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수전 라이스(56)도 하마평에 올랐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외교 전문가로 바이든과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다만 선출직 경험이 없고, 미국의 최대 외교 참사로 꼽히는 ‘벵가지 사태’(2012년 9월 리비아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대사관 침입으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당시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사망)의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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