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런던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중 다친 극우 백인 발견한 허친슨
격해진 시위대 틈에서 업고 나와… SNS로 알려져 ‘영웅’으로 떠올라
“폭력 말렸으면 플로이드 살았다”
13일 오후 영국 런던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궁(국회의사당) 앞 의회광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광장 일대에서는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를 추모하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와 이에 맞서는 극우 성향의 백인 시위대 수천 명이 모였다.
오후 2시가 되자 극우 시위대는 의회광장 북쪽 트래펄가 광장까지 행진했다. 양측 간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행진을 막았고, 그때부터 물리적 충돌이 시작됐다. 욕설을 하고 술병, 화염병을 던지는 극우파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양측 시위대도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고,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난리 통에 흑인 패트릭 허친슨 씨는 한 백인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극우주의자로 보이는 백인은 흑인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자칫 감정이 격해진 시위대에 밟혀 더 크게 다칠 위기였다.
허친슨 씨는 이날 반인종차별 시위에 참석한 흑인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친구들 4명과 함께 현장을 찾았던 터라 극우 측 부상자를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허친슨 씨는 즉각 인파를 뚫고 백인에게 다가갔다. 일부 흑인들이 백인을 주먹으로 때리며 허친슨 씨의 앞을 막아서자 주변의 시민들이 ‘인간 장벽’을 만들어 그를 보호했다. 무사히 백인을 둘러업은 그는 인파를 뚫고 경찰 쪽으로 이동해 부상자의 치료를 요청했다.
이런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허친슨 씨는 인종차별 문제에 귀감을 주는 영웅이 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허친슨 씨는 영국 지상파 방송인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두려웠지만 당시에는 목숨이 위태로워 보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런던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는 허친슨 씨는 “사고 당시 조지 플로이드 곁에 있던 3명의 다른 경찰관이 우리처럼 폭력을 저지할 생각을 했다면 플로이드는 지금 살아 있을 것”이라며 “(현재 상황은) 흑인과 백인의 대결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인종차별주의자 간의 대결이며, 우리 아이들은 보다 공평한 세상에 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권은 허친슨 씨에게 찬사를 보냈다. 데이비드 래미 노동당 의원은 트위터에 “인간이 최악의 본능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만 반대는 어렵다”며 “그의 행동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CNN은 “허친슨 씨의 행동으로 반인종차별 시위가 폭력 사태로 사라지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유럽 각국 정부도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섰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14일 “영국 내 교육, 보건, 형사 사법 제도에서 소수민족이 경험하는 인종차별을 조사할 것”이라며 “이를 수행할 정부 위원회를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프랑스는 모든 차별과의 싸움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종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 보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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