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린 왜, 한국전쟁 치른뒤 거기 있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4일 03시 00분


[볼턴 회고록 후폭풍]
회고록 속 트럼프의 한미동맹 인식… “한미연합훈련을 ‘워게임’이라 불러”
지난해 北미사일 발사 보고 듣고선 “돈 달라고 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

“왜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싸운 뒤 (아직까지) 우리가 거기(한국에) 있어야 하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9일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밝혔다. 시리아 철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돌연 주한미군 문제를 꺼내든 것. 볼턴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왜 우리가 공짜로 얻어먹는(freeloading) 배은망덕(ingratitude)한 전 세계 여러 동맹국에 대해 (아직도)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했다고 적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23일(현지 시간) 출간된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이렇게 다수 등장한다.

○ “왜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고 있나”
‘주한미군은 대체 왜 있느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물음은 틈나는 대로 백악관 참모들에게 날아들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2018년 11월 8일 오후 2시경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과 미군 철수를 논의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왜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고 있는 건가?”라고 물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 국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우리가 도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What the hell are we doing there)?”고 했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차례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려 했지만 “(내 설명이) 아무런 영향(impact)을 주지 못한 게 분명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얼간이(chumps)’ ‘워게임(war game·전쟁 연습)’ 등 노골적인 표현으로 평가절하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2018년 7월 6, 7일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를 보고받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얼간이(chumps)가 되는 것을 끝낼 것”이라며 “이 ‘전쟁 연습(war game)’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왜 한국전에 나가 싸웠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전히 한반도에 그토록 많은 병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 북한 미사일 도발에 “방위비 더 받기 좋은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기 위해 미군 철수도 수차례 언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었던 지난해 6월 30일 청와대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군기지 비용 문제를 꺼내면서 “상황이 평화롭게 되면 아마도 우리는 떠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볼턴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선 “80억 달러(일본)와 50억 달러(한국)를 얻어내는 방식은 모든 미군을 철수한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볼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추가 보고를 받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돈 달라고 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This is a good time to be asking for the money)”이라며 “(북한) 미사일 때문에 50억 달러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한편 볼턴 회고록의 파장이 커지면서 여권에선 북-미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배경에는 볼턴의 노골적인 방해 공작이 있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볼턴은 지난해 2월 24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해 선발대로 하노이로 향하던 중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에게 연락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만든 하노이 합의문 초안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사전 작업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한상준 기자

#볼턴 회고록#한미동맹#주한미군#방위비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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