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은 국정경험이 전무한 대통령과 ‘슈퍼 매파’ 참모 간의 갈등을 다룬 책이라고만 치부하기엔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함의의 무게가 무겁다.
한국의 동의 없이도 대북 선제타격을 할 수 있고, 이란을 상대로 ‘레짐 체인지’ 필요성을 거리낌 없이 주장해온 전직 백악관 안보사령탑의 시각이란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해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과 미 언론 보도로 어느 정도 드러났던 위험천만한 상업주의적 안보관의 내용을 회고록은 소상히 전한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비 지출과 무역적자 문제에서 강한 집착을 보였고, 이 둘을 묶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한반도 안보 환경 관점이 아니라 비용의 문제에서 봤다. 훈련비용이 쓸데없이 비싸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이를 활용하라고 참모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볼턴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주둔미군 철수 가능성을 연계시키려 했다면서, “국무부와 국방부에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이들 부처의 대폭 인상 반대는 (주한미군 철수) 위험만 높였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수많은 논의에도 동맹국들이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고 전하며 미국이 동맹국을 지켜주는 것이지 “‘집단 방위’나 ‘상호 안전보장’과 같은 것 때문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이 확고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 한국이 역대 최대로 내놓은 13% 방위비 분담금 인상안을 놓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카운터파트와 합의에 도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는 언론 보도는 볼턴의 설명에 부합한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압박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동맹국들엔 ‘미국 우선주의’를 요구하며 막대한 안보비용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비용 문제로 촉발된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주독미군 감축 방침 발표는 ‘주한미군 철군이나 규모 축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게 한다.
미 대선이 4개월여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미국민들의 선택을 받으면 5년 뒤 한반도의 외교안보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예측조차 힘들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돼 한반도 평화 정착이 가속화될 수 있지만 도리어, 한반도 평화 정착은 강한 국방이 토대가 돼야 한다는 기본이 흔들릴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성명을 내고 “미국의 한국 방어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철통같다”고 밝혔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리지 않는 성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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