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홍콩에 대해 국방물자와 첨단기술의 수출 규제에 들어가면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본격적인 조치가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 처리에 맞서 공언해 오던 메가톤급 압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 미중 갈등의 격화 속에 특별지위라는 보호막을 박탈당한 홍콩의 위상이 앞으로 급속히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홍콩 엑소더스’ 불러올 강경 조치 신호탄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 작업은 민감한 안보 분야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 분야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 물자들이 독재체제 유지가 주목적인 중국 인민군의 손에 넘어갈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했다.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홍콩으로 수출한 군수물자와 장비는 7500만 달러(약 902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6400만 달러 규모의 군용 엔진과 터빈, 350만 달러어치의 탱크와 포, 미사일, 로켓, 총과 탄약 등이 포함된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이런 품목들의 수출 중단은 물론이고 골프채나 군용 미사일에 모두 쓰이는 탄소섬유 등 이중용도 물품의 수출 제한도 곧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홍콩에 수출을 허용한 국방물자와 서비스는 총 240만 달러(약 29억 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무부는 지난주 홍콩의 자치권 훼손에 관여한 중국 관료를 대상으로 비자 제한 조치를 취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6월 11일 미국 자본의 홍콩 이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모두 박탈하면 글로벌 금융자본과 기업들의 대거 이탈이 예상된다. 현재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 붙는 관세(1.7∼2%)는 중국과 동일한 25%로 늘게 된다. 미국달러와 홍콩달러 가치를 고정시키는 ‘달러 페그제’와 국제 금융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금융허브로 번영해온 홍콩이 특수성을 상실하고 중국의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홍콩 자금의 상당 부분은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으로 흘러가 있는 상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결국 홍콩의 성격을 규정하던 일국양제는 무너지는 셈”이라며 “서방은 홍콩이 사실상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할 것이고 하나둘씩 홍콩을 떠나면서 홍콩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수위 조절 시 홍콩 타격 제한적일 수도
다만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를 전면 박탈하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미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홍콩에는 현재 8만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고(2018년 기준) 1300개 미국 기업을 포함한 1541개 글로벌 기업이 활동 중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6월 초 의회에 “홍콩을 중국과 같은 관세 대상으로 취급할 경우 미국이 받게 될 영향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둔 미국, 경기 악화에 직면한 중국 양쪽 모두가 전선 확대를 원하지 않는 만큼 부분적 박탈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홍콩이 미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데다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예전 같지 않아 당장 중국 경제와 홍콩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대홍콩 수출이 2018년 전체 수출의 약 2.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중 미국의 특별 수출허가가 필요한 홍콩 수입품은 2018년 현재 1.2%이다.
홍콩 경제가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물류 등 서비스업 중심인 만큼 중국과 같은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타격이 제한적일 수 있다. CNN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를 인용해 홍콩의 대미 수출액(450억 달러) 중 1%만이 미국의 특혜 관세를 받는 홍콩 생산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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