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종신집권’ 러 개헌안 통과
‘연임제한 폐지’ 국민투표 78% 찬성… 2024년 4기 임기만료뒤 재출마 시사
31년 집권 스탈린보다 오래할수도… 소련 붕괴후 ‘강한 러시아’ 재건
집권초기 7%대 성장률 보였지만 저유가로 불황 지속돼 지지 하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8)이 사실상 종신 집권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푸틴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그가 언제까지 집권할 수 있을지는 ‘경제 성적표’가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푸틴 기존 임기 백지화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일(현지 시간) 열린 개헌 국민투표 개표 결과 77.9%가 개헌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반대는 21.3%에 그쳤다. 투표율은 65%였다.
개정 헌법에는 국제법보다 국내법(헌법) 우위 원칙, 최저임금 보장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핵심은 2024년 네 번째 임기를 마치는 푸틴 대통령이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 있도록 그의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특별조항이 포함된 점이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직의 3연임을 금지해 왔다. 푸틴은 2000년부터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수행한 후 이 규정 때문에 2008년엔 총리로 물러났다.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이 된 후 2018년 재선돼 4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3연임 금지 규정으로 추가 재선의 길이 막히자 푸틴 대통령은 1월 개헌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번 개헌으로 이전 대통령직 수행 횟수는 ‘0회’가 된다. 2024년 4기 임기가 종료되는 푸틴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다. 당선된다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할 수 있게 된다. CNN 등은 “‘옛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31년)은 물론 러시아 표트르 대제(43년)에 비견되는 최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지난달 21일 “대선에 다시 나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재출마를 시사했다.
푸틴은 2000년 5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됐다. 1999년 12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며 KGB(옛 소련 정보기관) 정보요원 출신인 푸틴(당시 47세)을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선임한 지 6개월 만이다.
○ 경기 침체로 지지율 하락
1인 독재 체제를 유지해 온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는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열망을 대변한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붕괴된 후 경제는 불황에 빠졌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서방의 자본주의에 굴복했다’는 열패감이 가득했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은 밖으론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안으로는 공산당 수뇌부 등 과거 기득권을 속속 제거했다. 동시에 소득세를 인하해 서민의 지지를 얻었다. 2014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반발에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푸틴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도 없다.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석유왕’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등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들은 각각 비리 연루 의혹, 의문의 피살 등으로 잊혀졌다고 BBC는 전했다. 이제는 푸틴을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이룬 ‘푸틴 시스템’의 지배 구조가 공고해졌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하지만 변수도 있다. 과거 70∼80%에 이르던 푸틴 지지율은 피로감, 경기침체,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최근 2000년 집권 이래 최저인 59%(5월 기준)로 주저앉았다. 개헌 국민투표 결과를 비판하는 시위도 속속 열리고 있다.
종신 집권 여부는 결국 경제가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대 초중반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러시아는 매년 7%의 성장을 이뤘다. 현재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러시아는 경제난에 빠졌다. 성장률은 2010년대 중후반 들어 1∼2% 수준에 머물고 있다.
푸틴이 2024년 재집권에 성공하면 국제 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이후 시리아 사태에 적극 개입해 중동 중재자 이미지를 굳혔다.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덩치를 키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EU에 맞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자신처럼 장기 집권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조를 이어가면서 러시아―중국의 세계 패권 장악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보내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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