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아시아·태평양계 혐오사건 832건
"최고 지도자 선동적 발언 영향이 혐오 부추겨"
#1. 41세 필리핀계 여성 도널린 페러 가족은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서남부 오션사이드 인근을 걷던 중 한 여성이 차를 세우고 “당신들이 코로나를 시작했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소리친 여성은 페러 어머니의 이웃이었다.
페러는 “왜 우리한테 그러느냐. 나는 간호사이고 아버지는 미국을 위해 싸웠다. 아이들한테 인종차별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리 와서 내 얼굴에 대고 말해봐”라는 조롱 뿐이었다. 하지만 페러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기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2.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사는 백인 여성 리나 허낸데즈는 지난달 10일 윌슨파크에서 운동을 하던 아시아계 여성에게 다가가 “아시아로 돌아가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차가 주차돼 있던 곳 인근에서도 한 아시아계 남성을 “차이나맨”이라고 부른 뒤 “그거 알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
#3. 지난달 한 조리용품 가게는 수백통의 혐오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정문엔 “일본으로 돌아가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가게를 폭발할 것이다. 우린 당신이 사는 곳을 안다”는 경고 편지가 붙어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6일 보도했다.
‘AAPI 혐오 금지’(Stop AAPI Hate) 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난 3개월 동안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아·태계 혐오 관련 사건이 832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것부터 “바퀴벌레처럼 끔찍하다”“바이러스가 너희 모국에서 왔다”는 등의 언어적 폭력부터 신체·물리적 폭력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시비를 걸고 침을 뱉고 물건을 던지며 상해를 가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이 단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AAPI에 대한 폭력적인 언행이 보편화됐다고 토로했다. 이 단체에만 가게, 직장, 학교, 온라인 등에서 81건의 폭행 사건과 64건의 인권침해 사건이 보고됐다. 아태계 입법 코커스 의장인 데이비드 츄 하원의원은 “코로나19뿐 아니라 혐오도 대유행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들은 이 같은 현상이 급증한 것은 혐오를 부추기는 미국 최고 지도자의 선동적인 언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중국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데 이어 ‘쿵 플루’(kung flu)라는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인종차별적 언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에서 이 단어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토런스 하원의원인 앨 무라츠치(민주당)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난데없이 나타나 아시아계를 공격하기 시작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청신호를 준 대통령이 있는 것 같다”면서 제도적인 인종차별을 규탄했다.
이 단체 지지자들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코로나19가 인종차별과 관련해 아태계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연구와 혐오사건 증가 문제를 조사하는 팀을 꾸리기 위해 140만 달러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주 진행된 표결에서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API 혐오금지 단체 설립자인 맨주샤 컬카니는 “아시아계는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