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지난 9번의 미국 대선 중 8번 당선자를 정확히 예측해낸 전문가로 유명합니다. 워싱턴에서는 ‘대선 족집게’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는 특히 2016년 대선에서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이 제대로 맞히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일찌감치 공언해 주목받았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예언했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 3년 전부터 이미 내놓았고요.
비결은 뭘까요. 그가 13개의 명제를 바탕으로 설계해낸 대선 예측 기준이 바로 그 답입니다. 릭트먼 교수는 1860년부터 치러진 미국의 모든 대선 통계를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13개의 명제(Key)를 추출해냈습니다. △장/단기 경제 상황 △사회 불안 △외교/군사 분야 성공 여부 △집권당의 입지 △정책 변화 같은 것들입니다.
이 13개의 명제 중 6개 이상이 거짓(false)로 나오면 집권당이 재집권에 실패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미국 대선은 후보 개인이 아니라 집권당 및 집권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 등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의 지론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11월 3일에 치러지는 대선에 대한 그의 전망은 어떨까요. 릭트먼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달 말 발표되는 미국의 경제 지표들을 본 이후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일단 선택을 유보했습니다. 대선까지 불과 100일이 남은 상황에서 그만큼 대선판이 흔들릴 수 있는 변수들이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그는 “13개 명제 중 경제문제와 사회적 불안정 등 여러 가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쪽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고, 경합주에서 큰 폭의 차이가 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바이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4개의 명제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정적이었는데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지금은 부정적으로 분류되는 명제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전 새롭게 대선판에 뛰어든 도전자의 입장이었던 반면 이제는 방어에 주력해야 하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도 상기시켰습니다.
릭트먼 교수는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2005년 메릴랜드주 상원의원에 민주당으로 출마했던 경력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죠. 하지만 그런 그의 성향이 대선 예측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을 예측했던 때부터 그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함께 내놨으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선동적이고 분열적”, “쇼맨”,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다”는 등의 표현을 내놓은 이번에도 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의 변화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은 비판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어젠다가 무엇이냐는 언론 인터뷰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단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선된다면 정책의 상당수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와 비슷하게 유지될 것으로 본다. 시민권리를 약화시키고, 사법 시스템을 정치화시키며, 종교와 인종을 기준으로 편 가르기를 통해 나라를 분열시키는 일이 지속될 것이다. 대규모 세금 감면은 결과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쇠퇴할 것이고 보건 위기도 계속될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가 보는 미국의 변화 가능성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미국은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 공약해온 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상당수를 뒤집을 것이다. 외교정책 분야에서는 신(新)고립주의를 탈피하고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외국가 및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와 세금 분야, 이민 정책,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 관련 정책 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은 영감을 주는 후보는 아니다. 그는 J.F. 케네디도 아니고 버락 오바마도 아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empathetic) 능력이 있다. 분열가(divider)가 아닌 통합가(unifier)이다.”
미국 전국단위 및 경합주의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바이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4년 전의 뼈아픈 예측 실패 탓인지 선거 전문가들은 확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데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입니다. 간접선거의 특성상 득표율과는 다른 선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데다 바이든 후보의 빈약한 TV토론 실력,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뒤늦게 뛰어든 선거 전략가 로저 스톤의 흑색선전, 여론 조사에서는 침묵하던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선택 등도 선거판의 변수로 남아있습니다.
릭트먼 교수의 13가지 명제는 최종적으로 누구를 가리키게 될까요. 그리고 그 예측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질까요. 그의 ‘족집게’ 명성이 이번에도 확인될지 여부는 이제 곧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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