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연기하자고 전격 제안했다 빗발치는 반발 속에서 9시간 만에 이를 번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선 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수백만 장의 우편투표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 9시간 만에 말 바꾼 트럼프 :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많이 대선과 그 결과를 원한다”며 “대선 연기는 원하지 않고 선거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3개월이나 기다렸다가 투표용지가 모두 없어진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그러면 선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우편투표가 늦게 도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최근 언론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늦게 도착하는 투표를 정리하는 데 몇주, 몇달, 심지어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날짜가 바뀌는 걸 보고 싶나? 아니다. 다만 왜곡된 선거는 보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 느닷없는 대선 연기 제안 :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 “사람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연기하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보편적인 우편투표(부재자 투표 얘기가 아니다. 부재자 투표는 좋다) 도입으로 2020년은 역사상 가장 부정확하고 사기 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제안은 경쟁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최근 한 달간 모든 여론조사에서 뒤처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지하게 제안한 건지도 분명치 않다”면서 “선거일을 옮기려면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헌법상 불가능…즉각 반발 나와 :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대선 연기 제안 직후 전문가들은 ‘헌법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미 연방헌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대선 날짜를 움직일 권한은 오직 의회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직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위원장인 엘렌 와인트랍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공유하며 “아니오 대통령님, 당신은 선거일을 옮길 권한이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라고 지적했다.
트레버 포터 전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또한 NBC방송 인터뷰에서 “대선 연기는 헌법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통령은 임기가 만료되는 1월20일을 넘기면 재선 없이 임기를 이어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미국 연방법에는 “대통령 선거는 11월 첫째주 월요일, 화요일로 치른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헌법에도 내년 1월20일 이후로 대통령 취임식을 연기하는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 트럼프의 의도는? :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연기를 제안한 이유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코로나19에 대한 부실한 대처로 수세에 몰린 그가 선거에서 지더라도 이에 불복하기 위해 선거의 의미 자체를 깎아내리려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대선 연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언급한 것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우편투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자, 이를 막기 위한 ‘밑밥 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편투표를 확대하면 부정 선거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편투표자가 늘어나면 투표율이 낮은 젊은층이나 흑인의 투표를 북돋아 야당인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 GDP 충격 희석용일 가능성도 : 트럼프의 깜짝 연기 제안은 79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미국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전분기 대비 32.9% 감소)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버지니아대 선거 분석가 카일 콘디크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의회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선거를 제안한 것은 오늘 아침의 형편없는 GDP 수치에서 화제를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 민주당 즉각 반발 :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제안에 민주당에서는 즉각 반발을 나타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이날 트위터에서 헌법 제2조 1항 내용을 언급하며 “의회가 선거인단을 뽑는 시간과 선거일을 정할 수 있다. 선거일은 미 전역에서 동일한 날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상 대선 날짜를 지정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는 뜻이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도 “팩트 체크: (트럼프 대통령)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던 에이미 클로버샤 미네소타주 상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일을 연기할 권한이 없다”고 못박았다.
◇ 공화당에서도 반발 : 집권 공화당 인사들조차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 연방헌법상 선거일을 변경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기 때문이다.
양원의 공화당 대표격 인사들은 모두 선거일 변경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날 WNKY방송 인터뷰에서 선거일은 고정불변(set in stone)이라며 “상황이 어떻게 되든 잘 대처해 11월 3일에 예정대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또한 “미국 역사상 선거를 치르지 않은 적은 없었다”면서 “선거를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이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이 잇따르자 트럼프 대통령은 9시간 만에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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