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인 동유럽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66·사진)이 9일째 이어진 대규모 퇴진 시위에 한발 물러서면서 권력 분산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26년간 철권통치로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그가 권력 분산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벨타통신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17일 수도 민스크의 한 공장을 방문해 “권력을 나눌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미 대선이 끝났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야당이 원하는 새 대통령 선거는 없을 것”이라며 개헌 전에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거나 재선거를 치를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우선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뒤 새 헌법에 따라 국민이 원한다면 총선은 물론 대선, 지방선거도 다시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벨라루스 정부는 권력 분립을 위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하는 헌법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같은 해 집권을 시작한 루카셴코는 1996년 국민투표를 통해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후 26년간 집권해 왔다. 그는 9일 대선에서 승리해 6번째 임기를 맞았으나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여 있다.
루카셴코가 한발 물러선 이유는 민스크자동차 등 주요 공기업 근로자들과 국영TV 언론인들까지 부정선거 항의성 파업에 속속 동참하면서 압박감이 커진 탓이라고 BBC는 전했다. 러시아군 지원 가능성을 둘러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라루스의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19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벨라루스 제재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영국 가디언은 “군 지원을 언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마저 루카셴코의 불안한 권력을 감안해 직접적인 지원이나 움직임을 꺼리고 있다”며 “루카셴코 퇴진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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