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대통령은 우리를, 미국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 나의 미국인 동지들이여, 이것은 용서가 안 되는 일이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0일(현지 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 컨벤션센터. 청중 없이 무대에 홀로 선 조 바이든 대선후보는 평소의 온건한 이미지와 달리 단호했고 매서웠다. 카메라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날선 공격을 이어가며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초래된 “미국의 암흑기라는 장(chapter)을 끝내는 일이 오늘밤 여기서 시작됐다고 역사가 말하게 될 것”이라며 투표로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책임은 지지 않고 증오·분열 조장”
바이든 후보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부터 경제위기, 인종차별, 기후변화까지 현재 미국이 직면한 분야별 위기를 조목조목 찔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이라는 주어를 써가며 현재의 위기가 그의 실정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고, 앞서서 이끌기를 거부하며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맹폭했다. 특히 코로나19의 대응 실패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그는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적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기적도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모든 공격으로부터 언제나 예외 없이 미국과 여러분을 지키겠다”고 역설했다.
위기 상황의 미국을 ‘암흑기’로 규정한 그는 이에 맞설 ‘빛’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와 자신을 대비시켰다. 흑인 시민운동가인 엘라 베이커의 “사람들에게 빛을 주라, 그러면 그들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를 ‘나라의 영혼을 위한 전투’로 규정하면서 “열정과 품위, 과학, 그리고 민주주의와 모든 것이 표 위에 올려져 있다”며 투표 참여를 촉구했다. 분열된 미국사회를 향해서는 단합과 포용을 강조하며 “민주당 후보이지만 미국 전체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행사장 밖에는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대형 주차장에 일렬로 차를 세우고 대형 모니터로 바이든 후보의 연설을 지켜봤다. 연설을 마친 그가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 및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 부부와 함께 컨벤션센턴 밖에 깜짝 등장하자 이들은 성조기를 흔들고 경적을 울려대며 환호했다. 짧은 불꽃놀이까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독재자 비위 맞추던 날들은 끝났다”
바이든 후보는 1972년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정치 이후 48년 간 전당대회에만 12번 참석한 끝에 주인공으로 직접 무대에 서게 됐다. ‘바이든이 이날 연설을 얼마나 준비해왔냐’는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바이든의 측근인 테리 매컬리프는 “한 평생”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교분야를 비롯한 정책 전반의 대전환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동맹 및 친구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던 날들은 끝났다는 것을 우리의 정적(국가)들에게 분명히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중시하고, 북한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해서는 강경한 외교정책을 펴겠다는 취지다.
이날 존 네그로폰테 초대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CIA)국장, 존 벨린저 전 국무부 법률고문 등 70명이 넘는 공화당 소속의 전직 외교안보 분야 고위관료들은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월드 리더로서의 미국의 역할 약화 △독재자들과의 영합 △정보당국, 외교관, 군에 대한 비하 △‘법의 지배’ 훼손 △미국의 안보위협 직면 등 10가지를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로 짚은 뒤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최고의 이익”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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