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판 유전무죄’…‘레드불’ 창업주 손자, 뺑소니 사고 8년 만에 체포영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6일 16시 49분



뺑소니 사고를 내고 8년간 해외에서 호화 도피생활을 해온 태국 재벌3세에 대한 체포영장이 8년 만에 발부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워낙 커 태국 정부가 뒤늦게 나섰지만 실제 체포로 이어질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체포를 사실상 가능케 했던 태국의 반정부 시위 또한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방콕 법원은 25일 세계적 스포츠음료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아(35)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한 과실치사, 피해자 구조 소홀, 코카인 불법 복용 3가지다. 유위티야 가문은 202억 달러(약 24조원) 재산을 보유한 태국 2위 부호로 레드불 지분 51%를 소유했다.

오라윳은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페라리를 시속 177㎞로 운전하다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경찰관은 페라리에 매달린 채 200m를 끌려가다 사망했다. 현장에서 도주한 오라윳은 자택에서 체포됐다.

당시에도 음주, 과속, 코카인 복용 등 그의 각종 범법 사실이 확인됐지만 경찰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 “사고 전이 아닌 사고 후에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의 일방적 진술을 받아들였고 사망자의 동료가 오라윳에 유리한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결국 보석금 50만 밧(약 1900만 원)을 내고 석방됐고 해외로 도피했다. 오라윳은 검찰 소환에 7차례나 불응했고 전용기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호화 생활을 즐겼다. 2017년 4월 그의 행적이 공개되자 검찰이 다시 수사에 나섰지만 번번이 검거에 실패해 “일부러 안 잡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달 검찰은 오라윳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이 쁘라윳 짠오차 총리와 왕실을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모른 척 하던 짠오차 총리가 나섰다. 짠오차 총리는 4일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재수사 결과 오라윳의 과속 및 혈액 내 코카인 성분 검출이 확인됐다.

태국에서는 7월 중순부터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육군 총사령관 출신으로 2014년부터 집권 중인 짠오차 정권의 경제 실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처 등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국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군주제 폐지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달 16일에는 방콕 ‘민주주의 기념탑’ 앞에서 수만 명이 군부독재 타도 및 왕실 개혁을 외쳤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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