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0개 지역 봉쇄령 검토했다가…유대교 극단주의자 반발에 철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15시 13분


이스라엘서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지역에 봉쇄조치를 검토했다가 유대교 극단주의자 반발에 밀려 이를 철회했다. 대신 야간통행을 금지키로 했는데, 후퇴한 조치를 두고 종교가 방역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회 갈등까지 커지고 있다.

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가 많은 40여 개 지역에서 야간통행 금지 조치를 실시한다”고 6일(현지 시간) 밝혔다. 야간통금 지역은 7일부터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되며, 병원 등 필수시설을 제외한 상점들도 문을 닫는다. 해당 지역에선 학교 등하교도 당분간 중단된다.

이스라엘 보건 당국은 이번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두고 별도의 종료시한을 두지 않고, 확진자수 추이를 보고 완화조치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스라엘서 5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07명까지 늘어나자 서둘러 방역조치를 강화한 것이지만, 당초 계획했던 일부 지역에 대한 봉쇄령 보다는 완화된 조치다. 봉쇄령은 해당 지역 거주자가 집에서 500m 이상 벗어날 수 없으며, 대부분의 사업체도 폐쇄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내각은 당초 6일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많은 10개 지역에 대해 집에서 봉쇄령을 내리기 위해 내각 투표를 소집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초정통파로 불리는 극단주의 성향 유대교인 ‘하레디’의 반발을 사면서 무산됐다. 봉쇄령이 예고된 지역에 하레디 집단 거주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레디 지도자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하레디 지역을 짓밟고 교인들을 마치 질병의 매개체로 다룬다”며 봉쇄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6일 야간 통금을 발표하는 성명을 통해 “통금 지역은 무작위로 설정된 것도 아니고, 어떤 단체를 탄압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 감염자수와 비율에 따른 과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레디를 표적 삼아 방역조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하레디는 유대교 율법인 토라에 근간을 두고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정통파 원리주의 세력을 일컫는다. 고대 유대교 경전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과정에서 생계는 주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데다가 군복무를 거부해서 이스라엘 내에서도 논란이 빚어지곤 한다.

주로 10여 명에 이르는 대가족 형태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들은 주로 신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예배를 다른 어떤 활동보다 우위에 두는 등 집단활동을 중요시 여기다 보니 정부의 방역지침이나 격리 조치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서 초기 코로나19 확산 당시 하레디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세에 하레디 집단 거주지역에 칼을 빼들려고 했던 이유다.

그러나 하레디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작지 않은 데다가, 보수세력으로 네탸나후 총리의 정치적 지지세력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에 다루기 쉽지 않은 세력으로도 꼽힌다. 이로 인해 이번 봉쇄령 철회가 방역논리 보다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익명의 한 보건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 현지매체 와이넷뉴스에 “보건이라는 이슈 보다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날 봉쇄령 철회를 두고 야당 관계자는 “거의 우리 모두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말해 하레디의 입김이 지나치게 크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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