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27통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 편지에서 그를 ‘각하(your excellency)’라고 부르며 ‘마법 같은 우정’과 ‘판타지 영화 같은 만남’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너무 화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 시간)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이자 ‘공포(fear)’라는 책의 저자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에 담긴 내용을 입수해 이를 보도했다. 15일 발간될 예정인 이 책은 우드워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18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와 백악관, 행정부 인사들에 대한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 여기에는 북-미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과 정상회담 뒷이야기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27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이중 25건은 대중에게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친서에는 김 위원장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각하와의 또 다른 역사적 회담을 희망한다”고 적은 내용, 북-미 회담에 대해 “우리 사이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어떻게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지를 강조하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한 표현 등이 들어 있다.
김 위원장은 또 다른 친서에서 “각하처럼 파워풀하고 뛰어난 정치인과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이 기쁘다”고 했고, “(북-미 회담이) 전 세계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에서 각하의 손을 굳게 잡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날의 영광을 다시 체험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친서가 교환된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내용으로 볼 때 2018년 6월 1차 정상회담 이후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이 개최되기 전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화답했다. 그는 2019년 6월 트위터로 판문점에서의 깜짝 회동을 제안하기 직전 보낸 편지에서 “당신과 나는 독특한 스타일과 특별한 우정을 갖고 있다”며 “당신과 나만이 70년 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한반도에 번영의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회담 이후 두 사람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스 사본에 “위원장님, 멋진 사진이고 훌륭한 시간이었다”고 적어 이를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를 이야기하면서 “그(김 위원장)는 전에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웃음을 보인 유일한 사람”이라는 틀린 주장까지 내놓으며 관계를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보내고 이틀 뒤에 그는 또 다시 편지와 함께 DMZ에서 함께 찍은 사진 22장을 보냈다.
CNN방송이 추가로 전한 세부 내용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한 달 뒤 답장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뭔가 톤이 달라졌다. 우드워드는 이를 ‘실망한 친구나 연인’ 같은 뉘앙스였다고 적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에 기분이 나빠 있었다는 것. 그는 답장에서 “이런 명백하게 화가 났고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며 “정말로, 매우 화가 났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각하께 이런 솔직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이 있는 것이 엄청나게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북-미 정상회담 뒷이야기도 나온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놀라서(awestruck) 혼자서 ‘빌어먹을(holy shit)’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우드워드에게 핵무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인식을 부동산에 비유하며 “너무 사랑해서 팔 수 없는 집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나와서도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이외의 것을 추가로 내놓으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자 “하늘로 로켓을 쏘아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한 적이 없느냐”며 “영화를 보러 가자. 골프를 치러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북-미 정상 간 세 차례 만남에 대해 ‘성과가 없이 김 위원장 위상만 높여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에게 “나는 (그를) 만났다. 큰 거래였다”며 “이틀 걸렸고 만났다. 내가 포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화염과 분노’ 당시 북한과의 전쟁에 얼마나 가까이 갔었는지를 회상하면서 “나는 이전에 이 나라에서 아무도 갖지 못한 핵무기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우드워드에게 “우리는 당신이 보거나 듣지 못했던 물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 들어본 적도 없는 놀라운 것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 우드워드는 이에 대해 책에서 “나중에 익명의 인사들로부터 미군이 보유한 새로운 기밀 무기 시스템에 대해 확인을 받았다”며 “이들은 트럼프가 그 사실을 공개했다는 것에 놀랐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팀은 2017년 북한과 핵전쟁에 근접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계속 내놨다. 당시 짐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를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북한의 발사를 대비해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으며고, 기도하기 위해 워싱턴의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책은 소개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