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성을 스스로 잘 알고도 공개적으로는 일부러 이 사실을 감췄다는 폭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국민들을 패닉에 몰아넣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은폐와 행정부의 더딘 대응이 수많은 사망자를 낸 요인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9일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출신 언론인인 밥 우드워드의 신작 ‘격노(rage)’의 내용을 미리 입수해 이 같이 보도했다. 이 책은 우드워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18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되던 1월 28일 백악관의 안보팀으로부터 기밀 정보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바이러스는 대통령 임기 중 가장 큰 국가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매슈 포틴저 당시 부보좌관도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을 숨지게 한 1918년 스페인 독감만큼 치명적일 것”이라며 “중국에서는 이미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고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공중보건에 관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으로부터의 입국도 전면 차단했다.
열흘 뒤 2월7일 우드워드와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뚜렷이 인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코로나19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는 매우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떠돌아다닌다고 한다”며 “독감보다 5배는 더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대중들에게는 위험성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경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코로나19는 잘 통제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조만간 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 반복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를 초기에 억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인 2월 한 달을 그대로 날려버린 것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그는 3월 19일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도 했다. 사실을 밝혔다가 시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뷰에서 “어제 오늘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노인들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그렇다는(위험하다는) 점”이라며 자신의 공개발언과 배치되는 말을 이어갔다. 이어 4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에게 “이건 끔찍한 일이다. 믿은 수가 없다”, “전파가 너무 쉽게 된다. 당신은 믿지 못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무섭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인터뷰에선 “1월에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했던 경고를 기억하느냐”는 우드워드의 질문에 “아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면서 얼버무렸다. 마지막으로 7월 인터뷰에선 “바이러스는 나랑 관계가 없다. 내 잘못이 아니다. 중국이 망할 바이러스를 다 퍼뜨렸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이날 미시간주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달 간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협에 대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며 “그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는데도 고의적으로 직무를 유기했다. 미국인에 대한 생사를 가르는 배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을 안심시키려 한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연방대법관 후보 목록을 발표하면서 우드워드의 책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이 나라의 치어리더이고, 이 나라를 사랑한다”며 “나는 사람들이 겁에 질리거나 패닉에 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 우리는 힘을 보여주길 원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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