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낮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남부에 있는 ‘미드우드’라는 마을. 이곳의 한 오래된 2층집 앞 나무 밑에는 18일 세상을 타계한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이 집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지난 주말부터 이를 순례하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도 많은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영상을 찍기 위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테레사’라고 밝힌 한 백인 여성은 “직장이 이 근처라서 잠시 들러서 추모객들이 남긴 글들을 읽어봤다”라며 “긴즈버그는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선구자”라고 말했다.
이 집에서 도보로 약 20분 떨어진 긴즈버그 대법관의 모교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 정문 앞에도 긴즈버그를 추억하는 꽃과 양초, 메시지가 가득했다. ‘진정한 변화는 한 번에 한 걸음씩 생긴다’는 문구가 양성 평등과 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해 꾸준한 발걸음을 내딛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진’이라는 남성은 “나는 감히 그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인물”이라며 “전 세계 언론들이 이렇게 앞다퉈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서 너무 슬프다”고 했다.
‘진보의 아이콘’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한 추모 열풍이 그의 고향인 브루클린 및 뉴욕시 일원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과 다녔던 초등학교, 고등학교 등은 마치 순례길처럼 찾아다니는 시민들도 생겼다. 긴즈버그의 옛 집에 47년째 살고 있다는 노부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녀의 집을 물려받았다니 상당히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주말 내내 이 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는 민주당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 척 슈머의 모교로 이미 유명하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 학교 졸업식 전날에 암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았다.
뉴욕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브루클린의 딸’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주말 브루클린 법원 건물 앞과 맨해튼 광장에서는 각각 수백 명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세계무역센터와 그랜드센트럴터미널 등 주요 랜드마크 건물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평소 좋아하던 색인 파란색 등을 점등했다. 맨해튼 월가에서 황소상과 맞섰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즐겨 착용했던 레이스 칼라를 목에 둘렀다. 소녀상을 제작한 투자회사 측은 “레이스 칼라를 두른 것은 긴즈버그의 위대한 유산을 추모하는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맨해튼의 50번가에 있는 지하철역은 ‘50th’라는 역명을 누군가가 ‘Ruth’로 바꿔 칠해놓기도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삶을 기념하기 위한 주정부나 시청 차원의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브루클린다리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그녀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21일 발표했다. 에릭 애덤스 브루클린 자치구청장은 긴즈버그 대법관을 기리며 시의회 건물 이름을 바꾸자고 빌더블라지오 뉴욕시장에 제안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미 의회에서 시신이 안치되는 첫 번째 여성이 될 전망이다. 이날 발표된 장례 일정에 따르면 23, 24일 양일간 그의 시신은 연방 대법원의 계단에서 추모객들을 맞은 뒤 25일 미 의회에 안치돼 영결식을 갖는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다음주 남편이 묻혀있는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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