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수색 시도중 주민과 서로 쏴… 대배심 “정당방위” 살인죄 미적용
뉴욕-필라델피아 등 시위 격렬… 진압 경관 2명 총 맞아 부상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잠자던 흑인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진 지 6개월 만에 해당 경찰들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으면서 미국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피해자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Say Her Name(그녀의 이름을 말하라)’를 외쳤다.
23일(현지 시간) 켄터키주 루이빌의 중심가에선 시위대가 26세의 흑인 여성 브레오나 테일러 씨에게 총을 발사해 숨지게 한 백인 경관 3명의 처벌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도로변 쓰레기통에는 불이 붙었고, 일부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CNN에 따르면 연방수사국(FBI) 현지 지부는 특수기동대(SWAT)를 배치했다.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이 동원됐으며, 적어도 46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시위 과정에서 경관 두 명이 총에 맞는 일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용의자가 잡혔고 두 경관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빌 이외에도 워싱턴 뉴욕 시애틀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등 주요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잇따랐다.
시위는 켄터키주 대배심이 테일러 씨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경찰 3명에게 모두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앞서 3월 13일 밤 루이빌에 있는 테일러 씨 집에 경찰 3명이 마약 수색을 위해 들이닥쳤다. 수색영장을 소지한 경찰관들은 문을 강제로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고 있던 테일러 씨의 남자 친구는 경찰을 침입자로 오인해 총을 발사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경찰들이 32발을 대응 사격했고 테일러 씨는 6발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집에서 마약은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은 결과적으로 엉뚱한 집을 수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운동단체와 시위대들은 테일러 씨의 사망을 기억하자며 ‘Say Her Name’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대배심은 경관 3명 중 2명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해 아예 기소하지 않고, 1명만 부주의하게 총을 발사해 ‘이웃집을 위협한 혐의’로 기소하기로 했다. 결국 테일러 씨 사망에 책임을 지게 된 사람은 1명도 없다.
대니얼 캐머런 켄터키주 검찰총장(공화당)은 브리핑에서 “테일러의 남자 친구가 먼저 총을 발사했고 경찰이 대응 사격을 한 만큼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35세로 켄터키주에서 사상 처음 흑인 검찰총장에 오른 그는 “나도 흑인으로서 이 사건이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이번 결정을 옹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캐머런 총장이 일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테일러 씨 측 변호사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모욕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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