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병원으로 옮겨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후를 놓고 엇갈린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곧 사망하거나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면 앞으로 남은 대선은 어떻게 될까.
아직 그 가능성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워싱턴포스트와 로이터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향후 시나리오에 따른 대선 전망을 하나둘씩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전에 사망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참고할 만한 전례나 연방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법조항은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규정도 50개주(州)별로 제각각이라 향후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공화당의 후보 교체나 선거 연기 가능한가?
대통령 후보에 갑작스런 유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후보를 교체할 수 있는 규정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지금 대선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일부 주에서는 우편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투표를 한 220만 명의 사람들에게 재투표를 요구할 수도 없고, 그게 가능하다 해도 투표용지를 다시 인쇄해 발송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선 날짜를 연기해서 좀 더 시간을 버는 것은 가능할까. 대선 날짜는 법률상 미 의회에서 정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이론상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지금까지 대선이 연기된 적도 없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선거 연기가 결정되더라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는 선거 연기안(案)이 부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병세가 어떻게 전개되든 미국 대선은 11월 3일에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맞붙는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
● 선거 직후 당선인이 숨지면 어떻게 되나?
코로나19는 처음엔 증세가 가볍더라도 합병증으로 번지면 갑작스럽게 악화될 수 있는 병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3일 선거는 거뜬히 치러내더라도 이후 병세가 심각해지며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이 어려워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 경우는 어떻게 될까.
만약 당선인이 선거인단 투표일인 12월 14일 이전에 유고 상태가 되면 소속 정당은 교체 후보를 정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이전 후보가 선거인단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새로 교체된 후보가 그대로 당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별로 투표 규정이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미시간주에서는 선거인단이 투표용지에 올라와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해놨지만, 인디애나주에서는 후보가 사망하면 정당이 올린 교체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많은 주들은 이 경우 선거인단이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정해놓은 규정조차 없다. 각주의 법이 마련됐을 때는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을 거의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교체 후보를 누구로 할지를 놓고도 당내에서 내분이 생길 수도 있다. 선거인단이 교체 후보에 투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대 정당이 소송을 낼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이 판결해야 한다.
● 선거인단 투표 이후에 당선인이 숨지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선거인단 투표 뒤에는 의회가 내년 1월 6일 선거 결과를 승인해 공표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당선인이 숨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 수정헌법은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전에 숨질 경우 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규정해 놨다. 그러나 선거인단 투표만 마치면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되는지, 아니면 의회 승인을 마쳐야 당선인이 되는지가 법적으로 불명확하다.
이 경우 결국 미 하원이 차기 대통령을 정해야 한다는 해석이 많다. 하원 투표는 각 주에서 대표 1명씩이 참가하는데 지금은 공화당이 절반이 넘는 26개주에서 다수당을 점하고 있어서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다. 물론 이 같은 하원의원 의석 분포는 11월 3일 선거 이후에 다르게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 결국엔 법원이 키를 쥐어
이처럼 대통령 후보나 당선인의 유고 상황이 생기면 경우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데다, 각각의 경우에 따른 규정이나 전례가 거의 없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결국 이런 혼란과 갈등을 법원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인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서둘러 지명한 것은 이 같은 돌발 상황에서 공화당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배럿 판사가 상원 인준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면 미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6, 진보 3으로 보수 절대 우위로 바뀐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상원의원들의 코로나19 확진에도 불구하고 배럿 판사의 의회 청문회를 예정대로 12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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