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을 염두에 둔 경고성 발언을 쏟아낸 것은 대내 단합을 통해 미중 갈등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애국심을 고취하는 과정에서 중국 내 반한(反韓) 기류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시 주석은 23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참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40여 분간 연설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6·25전쟁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을 한 것은 2000년 장쩌민(江澤民) 주석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행사는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이 전쟁(6·25전쟁)을 거친 후 아무리 강한 나라, 아무리 강한 군대라 하더라도 세계의 흐름에 역행해 약자를 괴롭히고, 침략을 확대해 간다면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강한 나라, 군대’ 등을 언급하며 초강대국 미국을 사실상 겨냥한 것.
시 주석은 또 “현재 세계가 직면한 어려움과 도전은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대처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일방주의·보호주의·극단적 이기주의나 협박·봉쇄·극한의 압력 행사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뿐더러 반드시 죽음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도 직접 비판한 셈이다.
특히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 ‘죽음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는 등의 강한 표현은 극단적 애국주의를 추구하는 환추시보 등 일부 중국 언론에서 비슷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시 주석이 직접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시 주석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의의를 설명하는데도 절반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6·25전쟁이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중국과 미국의 국력은 큰 차이가 났지만, 중국군이 북한군과 힘을 합쳐 ‘미군 불패의 신화’를 깼다”면서 “이를 통해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양의 해안에 대포 몇 발만 쏘면 한 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는 서방 침략주의자들의 생각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전쟁의 불길을 중북 접경까지 끌고 왔다”면서 “중국은 침략자를 때려눕혀 전 세계를 경천동지하게 했고 신중국의 대국 지위를 세계에 보여줬다”고 했다.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로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냈고, 신중국의 안전을 지켰으며, 한반도 정세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지켜냈다”고 의미도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시 주석은 “오늘날 중국은 ‘두 개의 백 년’(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인 2021년, 신중국 건국 100년인 2049년) 목표 달성의 중요한 역사적 교차점에 서 있다”면서 “항미원조 전쟁의 고난을 뚫고 거둔 위대한 승리를 기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시 주석까지 나서서 강한 톤으로 항미원조 정신을 앞세우는 것은 1차적으로 미국에 맞서 대내 결집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6·25전쟁 상대국이었던 한국에 대한 중국 내 반한(反韓) 기류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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