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퀸시 애덤스라는 미국 6대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200여 년 전 나온 말이지만 지금 들어도, 아니 지금 듣기 때문에 더욱 수긍이 갑니다. 글로벌 미디어와 인터넷 헤드라인을 매일 장식하는 자리에서 내려온 뒤의 삶은 얼마나 허전할까요. 이 말을 한 애덤스 전 대통령도 얼마나 전임 대통령의 삶이 싫었던지 한참 급을 낮춰 하원의원으로 다시 정치 세계에 뛰어들어 17년 동안 활동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새 미국 대통령을 뽑는 때입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번에 안 물러난다고 해도 어차피 4년 뒤에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난 뒤 어떻게 전임 대통령의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후 살아가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인데요. 지구상 그 어느 누구보다 관심의 초점이 되기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슬기롭게 전임 대통령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요.
미국에는 ‘전임 대통령 클럽’이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전임 대통령 장례식이 있을 때 이 클럽 회원들은 서로 모여 정담을 나누고 어깨를 도닥여 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클럽에 자동 가입은 되겠지만 환영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본인도 인정했습니다. 지난해 블룸버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전임 대통령 클럽에서 ‘왕따(집단 따돌림)’ 당할 것 같다”구요.
전임 대통령도 명성과 대중적 인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떠난 뒤 외교와 자선활동을 통해 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클럽의 지원사격도 없이 혼자 ‘포스트-프레지던트 라이프(퇴임 후의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퇴임 후 처량한 삶을 살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것이다” “‘트럼프-TV’를 개국할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트럼프타워를 지을 것이다”는 등 들리는 얘기가 많죠.
가능성 중 하나는 ‘펜실베이니아 대통령’설(說)입니다. 워싱턴에서 백악관은 펜실베이니아 가(街)에 있습니다. 우연하게도 워싱턴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도 펜실베이니아 가에 위치해 있죠.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트럼프 호텔에 운동본부를 차려놓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펜실베이니아 가의 또 다른 대통령’이라는 의미죠. 트위터로 기자 브리핑을 매일 열고, 폭스뉴스 진행자나 논객을 초청해 열렬 지지자들이 좋아할만한 이슈를 만드는 것이죠. 이 방안은 상당한 논의가 진전됐다고 합니다.
재임 업적을 홍보하는 테마파크 건설 소문도 들립니다. 허황된 얘기 같다구요? 아닙니다. 나중에 건설될 트럼프 기념 도서관을 변형시켜 기념관도 보고 놀이시설도 즐기는 방식으로 짓는다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죠. 기념 도서관이야 전임 대통령의 특권이니 당연히 세금으로 지어지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에 ‘디즈니월드’가 있으니 그와 견줄만한 테마파크 건설은 필생의 사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평소 친하게 지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독재자 친구들’과 조인트벤처 사업을 벌이거나 정치 컨설팅에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구상들이 실현되려면 시기가 관건입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퇴임 직후 일정 기간동안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집니다. 워싱턴 전문용어로 ‘그레이스(자비의) 기간’이라고 하죠. 후임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빠져주는 기간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퇴임과 함께 텍사스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내 침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한 말은 유명합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후임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못마땅했지만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전통”이라며 2년여 동안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정치를 은퇴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 기간 동안 노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재창조 작업을 하게 되죠.
트럼프 대통령은 열성 지지자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활동을 재개하고 싶은 마음일 텐데요. 하지만 정치의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재개 시점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모르죠. 북한에서 사업을 벌일 구상을 하고 평양 경기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잡고 나타나 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날이 올 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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