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불복을 공식화하고 대대적인 소송전을 예고하면서 미국 사회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졌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권에 더욱 가까이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차기 대통령 공백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소송이 연방대법원까지 가면서 장기화될 경우 정국 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협의와 이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보수가 절대 우위인 대법원의 판결로 개표 결과가 뒤집힐 경우 또 다른 불복 사태는 물론 국론 분열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는 12만 명을 넘기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해 미국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 트럼프, 패배한 모든 주에 줄소송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최근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주장한 모든 주들은 유권자 사기와 선거 부정으로 인해 우리의 법적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며 “증거는 많다.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썼다. “개표를 중단하라”는 등의 트윗도 쏟아냈다.
실제 트럼프 캠프는 전날부터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 주요 경합주에서 개표 중단 소송을 내거나 재검표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어 캠프 측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추가 소송을 내고 네바다주에서도 법적 조치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거나 막판 우편투표의 개표로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는 승부처들이다.
바이든 후보가 간발의 차로 리드 중인 네바다주에서는 트럼프 캠프가 “사망자 또는 거주요건을 채우지 못한 유권자들의 표가 잘못 계산됐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에선 우편투표 도착 시한을 연장한 것이 적법한지 여부를 가려 달라는 소송이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여기에 힘을 집중할 계획이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 측의 잇단 소송이 전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이 아니며 결국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거 제도 자체를 흠집 내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 “이번 선거의 패자는 미국 민주주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평소의 부정선거 의혹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이 제기한 각종 소송에 명분을 쌓으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들이 이번 선거를 조작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며 우편투표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거론했다. 특히 “우리는 누구도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게 놔둘 수 없다”면서 이 사안에 대해 자신의 지지자들이 목소리를 내줄 것을 당부했다. 사실상 지지자들에게 개표 결과를 인정하지 말고 반대 시위에 나서라고 선동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말 1차 대선 TV토론에서도 극우 집단인 ‘프라우드 보이스’를 향해 “물러서라, 그리고 대기하라”고 말해 이들의 폭력시위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연방수사국(FBI)에 적발된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민주당)에 대한 납치 음모 사건도 극우 폭력집단을 두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극심한 대선 후폭풍 속에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 CNN은 이날 미국에서 12만1054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전날 10만2831명에 이어 이틀 연속 일일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고집하면서 사회 분열과 국가적인 혼란이 장기화되면, 비록 나중에 상황이 정리되더라도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 사설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미국은 매우 분열된 나라로 남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번 선거의 패배자임을 확인시켜 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소송전이 4년 뒤 재도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켜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기든 지든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공화당에 큰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패배할 경우 2024년 대선 재도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이날 아일랜드 싱크탱크인 국제유럽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에너지가 넘치는 74세로, 이번 선거에서 진다면 2024년이나 2028년에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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