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올해 미국 대선 드라마가 마무리됐습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두 그룹의 사람들이 울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도널드 트럼프 선거진영과 지지자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졌으니 이 사람들의 우울한 반응은 당연합니다,
또 다른 그룹은 여론조사 업계입니다. 내놓는 사전 여론조사마다 바이든 당선자의 압승을 예측했던 업계는 실제 개표 집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 밖 선전을 하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처지가 됐죠. “대충 바이든 당선자가 이겼으니 됐지 않았느냐”구요? 아닙니다. 정확성이 생명인 여론조사에서 “대충”이라는 말로 그냥 넘어가는 사례는 없습니다.
특히 언론이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믿고 바이든 압승 시나리오를 만들어놨다가 함께 망할 뻔했던 미 언론사들은 여론조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몇 개 헤드라인을 볼까요.
“여론조사, 남은 믿음마저 다 버렸다”
“대재앙 여론조사”
“여론조사업계 자폭해야”
“여론조사(의 필요성)를 여론조사 하라”
아직 개표가 완료된 상황은 아닙니다만 현재까지 나온 결과로 본다면 바이든 당선자의 ‘접전 끝 승리’라는 결론이 가능합니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서 몇몇 경합 주에서 우편투표에서 큰 격차를 보인 것이 승리의 견인차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사전 여론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거 직전까지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7.2%포인트, 뉴욕타임스 산하 ‘파이브써티에이트’는 8.4%포인트로 바이든 당선자의 여유 있는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일부 조사기관은 “두 자리 수로 이긴다”고 장담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의 오차범위가 3% 내외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바이든 당선자의 승률을 너무 높게 잡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죠.
개별 주로 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 주에서 이기자 다들 놀랐는데요. 원래 여론조사에서는 2.5%포인트 격차로 패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는데 정작 개표를 해보니 3.5%포인트 차이로 이겼습니다. 오하이오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 내외로 이기는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하더니만 개표 결과는 8%포인트 차이로 압승 그 자체였습니다.
언론처럼 여론조사도 트럼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과소평가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상하원 선거도 함께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전반적으로 공화당 후보들을 너무 ‘박하게 대접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수전 콜린스라는 메인 주의 여성 상원의원(공화)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다가 찍혀서 이번 선거에서 물갈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그랬는데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하더니 결국 6.2%포인트 차이로 이겼습니다.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는 12%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차이로 패할 것으로 예측됐었는데 말이죠.
선거 여론조사는 힘들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개표 집계라는 결과로 바로 확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험지 채점’이 즉시 된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 그룹에서 정말 ‘톱 중의 톱’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평소 미국 정치에서 이름도 못 들어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니, 파이브써티에이트니 하는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 때만 되면 여기저기 인용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대활약을 하죠. 미국인들의 농담 중에 “‘리얼클리어폴리틱스’라는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면 선거철이 왔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고고한 명성을 쌓아오던 여론조사가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크게 한번 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 여론조사업계는 1년여의 자체 조사를 거쳐 실패의 원인을 심층 분석하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표본 추출에서 인종, 경제력 등과 비교해 덜 발달된 교육 수준이라는 변수를 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또 유선전화와 함께 휴대전화까지 응답자에 포함시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냥 끊어버리는 응답에 대해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의 대안을 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선된 올해 대선 여론조사로 또다시 망신을 당했으니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우편투표 유권자들의 응답이 과대 반영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합니다. 친(親) 바이든 성향의 우편투표 유권자들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외출을 꺼리니 여론조사 전화를 받고 적극적으로 응답할 가능성이 높죠. ‘샤이 트럼프(숨은 트럼프 지지자)’의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감안해야 했다는 반성도 나온다고 합니다. 샤이 트럼프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응답 자체를 거부하는 비율이 높으니까요.
외부인들이 보기에 여론조사는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이 분야는 웬만한 정보는 ‘업계 비밀’이라며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론조사가 크게 빗나간 두 건 모두 트럼프 시대에 집중돼 있다 보니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는 여론조사로는 끄집어내기 힘든 그 어떤 무엇이 있다”는 워싱턴 호사가들의 뒷얘기가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이제 트럼프 시대는 끝나가고 있지만 여론조사는 한번 잃는 신뢰를 되찾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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