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신임 주일대사에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전 의원(68)을 내정했다. 강 내정자는 4선 의원 출신으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던 여권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청와대는 “한일관계를 풀어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며 일본을 향해 관계개선 메시지를 보냈다. 강 내정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이 출범했지만 한일관계에 변화된 상황은 없다. 당장 돌파구를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양국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정치적 결단을 강조했다.
●일본통 내정해 임기 내 한일관계 개선 의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강 내정자는 일본 동경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학계에서 오랜 기간 일본에 대해 연구한 역사학자”라며 “4선 국회의원 경력의 정치인으로 의정활동 기간에는 한일의원연맹 간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일본통”이라고 소개했다.
고향 제주에서 17대부터 20대까지 내리 4선을 한 강 내정자는 일본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대 국회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첫 정치인 출신 주일대사다.
강 내정자는 일본어가 유창해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하고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강 전 의원은 (일본) 고위급 네트워크를 쌓아왔다”며 “현 시점에선 정통 외교관보다는 정치인 출신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 폐기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일본의 수출규제 등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은 가운데 양국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일본기업 국내 자산 매각 현실화를 앞두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통 큰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강 내정자는 2018년 ‘문재인-아베 공동선언’을 제안하며 탑-다운식 해법을 주장해왔다. 최근 일본을 찾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에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한 것도 이 연장선상이다.
역대 정부 역시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정치인 대사 카드로 반전을 모색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조세형 대사, 이명박 대통령 당시 권철현 대사, 박근혜 대통령 시절 유흥수 대사 등이 대표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임기 내 한일관계를 풀어가겠다는 뜻을 전하며 대사를 맡아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창일 “피해자들, 문희상안 수용 어려울 것”
다만 강 내정자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각에서 나오는 한일관계 급진전 기대에는 일단 거리를 뒀다. 그는 “‘일본 기업 국내 자산 현금화는 안 된다’, ‘한국이 강제징용 해결책을 마련해달라’는 일본 정부의 원칙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금화를 하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강제징용 해법으로 제시된 이른바 ‘문의상 안’에 대해서도 “피해자들도 수용하기 어렵고 우리 정부도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양국 정부의 의지”라며 “우리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저쪽(일본)에서도 가능성을 좀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은 일본의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거친 뒤 이르면 다음달 부임할 예정이다. 다만 강 내정자가 그동안 일본에 강경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만큼 일본 일각에선 불편한 기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내정자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던 지난해 8월 한일의원연맹 소속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자민당 측과 면담이 불발되자 “우리가 거지냐. 아주 결례를 저질렀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7월엔 의원총회에서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대해 “아베 정권은 치졸하다. 정치 논리를 경제 문제로 확산시켰다”면서 “우리 정부도 원칙과 명분에만 집착하다 시기를 놓쳤다”고 비판해 당시 이해찬 대표가 손가락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제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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