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학벌’ 얘기를 하기 위해 영어로 시작해봤습니다. 지난해 바이든이 유세할 때 한 말인데요. “나는 HBCU인 델라웨어 스테이트에서 시작했다”라는 뜻이지요. ‘HBCU’는 미국에 100여개 넘게 있는 흑인 전용 대학을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인종차별 시대의 산물로, 델라웨어 스테이트 대학도 그 중 하나이지요.
“바이든이 흑인대학을 나왔다구?” 당장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9월 TV 대선토론 때 이를 문제 삼기도 했지요. 그는 바이든이 ‘치매 때문에 말실수를 한다’고 트집 잡으면서 “당신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델라웨어 스테이트 대학 출신인가”라고 공격했습니다.
TV토론 때는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미 언론들도 이상하게 여겨 팩트 체크를 해봤나 봐요. 그래서 바이든이 하려던 말의 의미는 “내가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델라웨어 스테이트 대학의 지지를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확실히 하자면 바이든 당선인이 나온 대학은 델라웨어 스테이트 대학이 아닌 ‘유니버시티 오브 델라웨어,’ 즉 델라웨어대입니다. 그 후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둘 다 좋은 대학입니다.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더 높게 쳐주는 대학들이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톱 클래스’는 아닙니다. 지금은 바이든 당선 축하 무드니까 아무도 크게 얘기하지 않지만 워싱턴에서는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배우 출신으로 일리노이 주 유레카 칼리지를 나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40여년 만에 아이비리그 학부나 대학원 졸업장을 가지지 못한 첫 번째 대통령”이라고요.
그렇다고 바이든 당선인에게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거나, 자신이 나온 대학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모교 졸업 기념연사로 네 차례나 등장했고, 대학 스포츠경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성 동문’으로 통합니다. 부통령 시절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블루 헨즈(푸른 암탉들)’라는 팀명으로 유명한 델라웨어대 미식축구 경기를 자주 관람하기도 했죠. 델라웨어대도 바이든 당선 때 홈페이지에 한국식으로 치자면 ‘우리 학교 경사 났네’라는 축하 배너를 내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본인은 아이비리그 졸업장을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의식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누가 이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면 상처도 받고요. 워싱턴은 그런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수재들이 대개 의사나 판사, 대기업 직장인으로 방향을 잡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워싱턴으로 진출합니다. 직접 정계에 투신하던지, 아니면 싱크탱크에서 정책 연구를 하면서 거대한 엘리트 공동체 사회를 형성합니다. 바이든의 한 측근은 “그는 워싱턴에 모여드는 수재들을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하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이든이 풍기는 분위기는 외골수 학구파나 연구자로 보이지 않지만, 의회를 통해 정력적으로 많은 정책들을 입안하고 협상하는 상원의원 생활을 40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뛰어난 학문적 성취나 졸업장 없이 ‘정책통’으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인재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는 의미겠죠. 자신의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하버드급 브레인들을 잘 활용하는 것, 이를 워싱턴에서는 ‘바이든 패러독스’라고 부르죠.
한 언론 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내정된 바이든 내각의 92%는 아이비리그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학력이나 경력보다는 자신의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치며 요직에 앉혔던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화려함 그 자체입니다. 국무장관에 지명된 토니 블링컨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국무부 요직을 거쳤고. 공화당이 집권해 정치에서 물러났을 때는 싱크탱크 연구원으로 로비스트로 수십 년의 경력을 가졌습니다. 론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역시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되기 힘들다는 연방대법원 서기직을 거쳤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낙점된 제이크 설리번은 예일대 졸업장에 영국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 출신입니다.
바이든 인재 경영론의 두 번째 포인트는 ‘오래 두고 본다’는 겁니다. 그는 인재들을 젊은 나이에 영입해 키우는데 매우 열성적인 스타일입니다. 젊은 정치인들과 많은 토론을 하고, 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벌려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죠. 일명 ‘그루밍 전략’입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초대 내각이 버락 오바마 시대 요직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바이든이 키운 인재들이 당시 정치 경험이 부족했던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많이 중용됐었다’일 겁니다.
바이든 사단의 대표주자인 클레인 비서실장 내정자는 20대 중반 나이에 의회에서 임명하는 법사위원회 자문변호사로 일하다가 우연히 이 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바이든 상원의원의 눈에 띄게 되면서 아예 바이든 진영에 합류해 1988년 대선 출마 때 연설담당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워싱턴도 작은 동네라 일 잘하면 소문은 나게 마련이어서 앨 고어 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바이든 부통령 비서실장, 오바마 행정부의 전염병 에볼라 대응팀 수장까지 맡게 되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시절 그녀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제임스 루빈 전 국무부 대변인 역시 바이든이 키운 정치인 중 한 명이죠. 그는 ‘바이든 인재론’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When you work for him, he trusts you to run with the ball and he protects you when you fumble.”(만약 당신이 바이든을 위해 일한다면, 그는 당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만약 당신이 실수를 했다면 그가 당신을 보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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