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 몸에 이물질을 주사할 수 없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백신을 접종시킨대. 이건 폭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한국이 보기에는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까지 전국 배포를 시작한 미국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만 정작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 반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은 백신 열풍에 휩싸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만간 안티-백신 주장이 크게 터져 나올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를 선도하는 세력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월드’라고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해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죠.
완패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나름 선전한 트럼프 대선 성적표에서 보듯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트럼프 열성 지지파들입니다. 지금 ‘MAGA 월드’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냥 ‘트럼프 열성 지지자’라고 한데 묶어 얘기하지만 사실 이들도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합니다. 흔히 ‘큐어넌(QAnon)’이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 음모론자, 반과학이성주의자, 반정부주의자, 복음주의자 등이 섞여 있습니다. 큐어넌 성향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엔서 디애나 로레인은 최근 인기 웹 프로그램인 ‘인포워즈’에서 “예수님이 맞는대도 나는 안 맞을 거야(I don‘t care if Jesus takes it, I’m not taking the vaccine)”라며 백신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이 말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 구호가 됐죠. 트럼프 대선 패배 후 뜨는 보수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의 백악관 담당기자는 “코로나19는 자연 치유되는 병이다. 정치인들이 통제의 수단으로 백신을 이용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죠. 폭스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도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강제 접종에 나설 것이다. 국가적 위기다”라고 겁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 부족’, ‘개인 자유권 침해’, ‘바이든 정권 무조건 반대’ 등 다양합니다. 특히 상당수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백신 ID’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강제 접종을 시킬 것이고, 개인증명서로서 백신 ID를 발급할 것이라는 소문이지요.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는 백신 ID가 없으면 안 되고, 심지어 취직도 할 수 없다는 가짜뉴스입니다. 바이든 차기 정부는 강제 접종 방침을 밝힌 바 없습니다. 또한 미국 영국 등 백신 배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접종 증거로서 백신 ID를 발급하겠지만 이를 여권 같은 개인 신분 증명으로 활용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상원 백신 관련 청문회에 전미내과외과의사협회(AAPS) 소속 증인들이 출석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AAPS는 권위 있는 ‘전미의사협회(AMA)’와 명칭은 비슷하지만 사실은 정부의 의료정책 관여를 반대하는 단체로,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을 거부합니다. 제인 오리엔트 AAPS 상임이사는 상원 국가안보·정무 위원회 청문회에서 “아직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특히 생식 기능에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반발 여론이 터져 나왔죠. “백신 배포가 시작되는 시점에 의회가 왜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느냐”는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백신을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민심이 아직 크기 때문입니다. 의학계에서는 백신이 집단면역 효과를 낼 수 있는 국민 접종 수준을 70~80%로 보고 있죠. 최근 의료 전문조사기관 카이저 패밀리재단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가 백신 접종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주저하는 비율이 42%로 높았고,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12%만이 주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애매한 태도가 지지자 그룹은 물론 보수적 미국인들의 백신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스스로 마스크를 벗었듯이, 자신이 발신하고자 메시지는 다양한 제스처로 지지자들에게 전하는 리더죠. 그는 백신 접종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은 물론 바이든 당선자까지 “TV 카메라 앞에서 접종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데도 말이죠.
물론 개발 및 승인 배포 과정을 신속하게 이뤄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 코로나19 ‘초고속(워프 스피드) 작전’ 자체가 백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백신을 맞을 건지 빨리 밝혀라”는 요구가 터져 나오는데도 트럼프 대통령 측은 “아직 접종 계획이 없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케일리 맥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백신 접종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됐기 때문에 급히 접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보다는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더 맞아 보입니다. 지금처럼 대선 불복 소송전으로 지지자 결집이 중요한 시기에 이들이 거부하는 백신 접종에 급히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권 이양 시점에 ‘백신을 맞네 안 맞네’ 문제로 미국은 또 한번 시끄러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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