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96) 여왕이 영국 민영방송 채널4를 통해 다소 황당한 크리스마스 연설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약 4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건 바로 가족이다. 해리 왕자와 메건(마클 왕자비)이 떠난 게 특히 슬펐던 이유다”며 “누군가 캐나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것만큼 상처가 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올해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 부부가 영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살겠다고 발표한 것을 꼬집으면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또 “2020년은 국민보건서비스(NHS) 의료진과 같은 용감한 영웅들이 돋보인 해였다”며 “이들은 굉장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를 치료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뒤 8일간의 입원 치료 끝에 퇴원했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 줄의 진주 목걸이와 진주 브로치를 한 채 원목 책상에 앉아 연설을 이어갔다. 책상에는 찰스 왕세자 부부와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사진, 그리고 왕실에서 키우는 웰시코기가 달려가는 모습이 담긴 액자 세 개가 올려진 채다. 뒤로는 커다란 트리와 선물이 보인다. 방은 붉은 벽지와 카펫으로 장식됐다.
여왕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에 연루된 차남 앤드루 왕자를 언급하는가 하면, 책상으로 올라가 ‘틱톡 챌린지’ 춤을 추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건 가짜다.
채널4는 특정 인물의 얼굴과 신체 부위를 전혀 다른 영상과 합성하는 기술인 딥페이크(Deepfakes)를 활용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들어냈다. 여왕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데 일가견을 보여온 여배우 데브라 스티븐슨(48)이 모든 것을 연기했다.
채널4의 이언 카츠 본부장은 “디지털 시대의 가짜 뉴스가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라며 “딥페이크 기술은 가짜 뉴스와 진실의 싸움이라는, 두려운 새로운 영역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친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은 “우리는 이제 자신의 눈조차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강하게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 스티븐슨은 “배우로서 짜릿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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