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美日 동맹만으론 부족… 한미일 협력해야 동아시아 안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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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 <2> 국제관계 분야 대가 美 조지프 나이
바이든, 동맹-다자주의 외교 복원
한국,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 접근
日은 한국 수출규제 조치 해제해야

국제관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일 3국 협력, 대북 억제 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지프 나이 제공
국제관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일 3국 협력, 대북 억제 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지프 나이 제공
《“동아시아 안정을 위해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만으론 부족하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앞(미래)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84)가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뒤(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앞(미래)을 내다봐야 한다”며 양국에 전향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미 동맹은 여전히 한국에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나이 교수는 지난해 미국 대선 전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선거캠프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한 자문에 응해 왔다. 그는 이달 20일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겼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한미 동맹과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비핵화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양국이 경제, 기후변화,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문제 등에서 협력할 수밖에 없다”며 바이든 당선인이 동맹과 다자주의로 중국을 압박한다고 해도 안보 문제가 걸려 있지 않으면 중국과의 무역을 차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때로는 중국과 경쟁하고, 때로는 맞서는 접근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라도 동맹 및 다자주의의 복원, 한미일 3각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 등의 개념을 정립하며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쳐온 국제관계 분야의 거물이다. 80대임에도 최근 트럼프 행정부를 분석한 저서 ‘도덕은 중요한가’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이메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선언했다. 세계 질서의 관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맹과 다자주의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 두 가지를 강조하면서 1945년 이후 미국 대통령의 주류 전통을 유지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그에게 계속 조언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이든은 유럽과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이나 호주를 괴롭히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로 미국 외교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도자가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건 당연하다. 핵심은 지도자가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일 수도 있고, 좁은 정의일 수도 있는데 트럼프는 거래 관계에 기초를 둔 협소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러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는 보다 넓은 접근을 필요로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훼손된 미국의 영향력과 외교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본다. 바이든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제하고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가능하다. 그가 미국 재건의 기반으로 삼아야 할 미국의 근본적인 강점은 아직 살아있다.”

―향후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중국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일부 회의론자는 미중 관계에서 새로운 냉전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상호 의존하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좀 더 예측 가능한 정책들이 시행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5세대(5G) 통신망이나 남중국해 같은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여전히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바이든이 기후변화, 유행성 전염병 등에 대해서는 협력적 개방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미국의 대중 정책이 ‘봉쇄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년간 경제, 군사, 외교 등 분야에서 전방위로 중국을 밀어붙였는데….

“나는 미중 관계가 ‘협력적 경쟁관계(cooperative rivalry)’라고 본다. 경제, 기후변화, 팬데믹 같은 생태학적 측면에서도 미중 양국은 협력을 요구받고 있다. 동시에 남중국해 등의 문제에서는 전략적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충돌 방지와 위기관리라는 두 사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경쟁적인 관계에서 협력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동맹과 다자주의로 중국을 압박하더라도 안보 문제가 걸리지 않으면 중국과의 무역을 차단하지 않는 식이다.”

―중국이 국제 질서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중국이 점차 힘을 키우면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원하는 것은 맞다. 다만 기존의 판을 걷어차겠다는 게 아니라 현재의 게임 판에서 더 많은 승리를 원한다는 의미다. 중국은 지금의 국제 질서 체제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중국이 내부 관행을 바꿀 것 같지는 않지만 대외 행동은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인권 침해, 지식재산권 도용, 비민주적 통치 등에 대한 비판은 타당한 우려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같은 트럼프 행정부 참모들의 대중국 강경 발언과 동맹국에 대한 무관심은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나이 교수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주목해온 지일파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아미티지-나이 리포트’로 불리는 미일 동맹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0년부터 작성해 이번이 5번째인 이 보고서를 통해 그는 어느 때보다 일본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며 미일 동맹의 강화를 촉구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이 맺은 정보동맹 ‘파이브 아이스’에 일본이 참여해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는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북핵 봉쇄와 억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근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에서 일본의 중요성과 한미일 3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는 계속 악화해 왔다.


“중국의 성장,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이 야기하는 미래의 도전을 감안할 때 과거사 문제가 우리 눈앞에 던져진 공에서 눈을 떼게 만드는 것은 실수다. 역사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안정 유지를 위해서는 미일 동맹 혹은 한미 동맹만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큰 틀에서 문제를 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본 측에서 더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한일 양국 모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를 해제하는 조치를 포함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깡패’라고 불렀다. 바이든 당선인이 임기 중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룰 것으로 보는가.


“바이든 당선인은 ‘김정은을 유혹해 핵무기를 포기하게 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순진한 믿음을 갖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핵화는 장기적인 목표로 남아 있어야 하지만 한미 동맹과 억지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행동에 한계를 가하는 것을 협상할 수도 있다. 이것이 역내 안정을 강화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을 더 가깝게 끌어들여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 보복도 경험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한국은 거대한 이웃 나라들 사이에 갇힌 희생자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한국이 지금까지 채택해온 전략대로 먼 나라(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맞선 중국의 경제 보복처럼 한국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도 있지만, 이 전략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한국에 최선의 선택이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글로벌 석학 인터뷰#조지프 나이#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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