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제재 흔들려는 의도”… 靑, NSC 열고 적극대응 선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03시 00분


[한국선박 이란軍에 나포]이란 ‘우라늄 농축 농도 상향’ 발표
한국선박 나포와 같은날 이뤄져… 美 ‘바이든정부 압박 겨냥’ 의심
이란核 갈등 다시 증폭 가능성… 靑안보실 중심 위기대응체제 가동
일각 “나포 위험 사전대비 소홀”… 中매체 “韓, 美 파놓은 구덩이 빠져”

외교부 들어서는 美대사-이란대사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왼쪽 사진)가 5일 오전 노규덕 신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들어서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외교부가 전날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에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렀다. 뉴시스
외교부 들어서는 美대사-이란대사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왼쪽 사진)가 5일 오전 노규덕 신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들어서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외교부가 전날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에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렀다. 뉴시스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시도다.”

4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선박 나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 질의에 이같이 밝혔다. 이란군의 나포가 단순히 상선 한 척이나 한국 정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제재를 흔들려는 의도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선박 나포와 이란 정부의 ‘우라늄 농축 농도 상향 발표’가 같은 날 이뤄진 점을 들어 차기 조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까지 있다고 보고 있다. 5일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미국이 파놓은 구덩이에 한국이 빠진 것”이라고 전하면서 미국의 대이란 강경책이 이번 사건의 빌미가 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한국은 중동에서 미국 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번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이 한국을 대신해 이란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사이에 한국이 끼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로키(Low-key) 대응을 유지하던 정부는 이란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대한 불만으로 한국 선박을 나포했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여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란 정권이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하나로 페르시아만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는 선박 억류를 즉각 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특히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이란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 선박을 억류하고 같은 날 “우라늄 농축 농도를 기존 4.5%에서 20%로 대폭 상향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AP통신은 “이란이 2015년 핵합의 이후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고 한국 국적의 선박까지 나포한 것은 중동에서의 긴장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이는 서구 국가에 대한 이란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은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6개국과 맺은 핵합의에 따라 최소 15년간은 3.67% 이상 농도로는 우라늄을 농축하지 않기로 하고 그 대신 ‘제재 완화’를 얻었다. 하지만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가 지난해 1월 3일 미군 무인기 공격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사망 1주기 무렵에 이뤄졌다는 점도 눈여겨보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최근 이란의 공군과 해병대 경계 태세 수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하고 이란이 조만간 이라크 등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5일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하는 등 공개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도 한국 선박 나포 직후부터의 대응 상황을 시간대별로 공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사건 발생 직후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한 뒤 어제 오후 4시 56분부터 외교부, 해양수산부, 국방부 등이 참석하는 긴급 관계부처 화상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부는 오늘(5일) 오전 9시부터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및 국정원까지 참석하는 상황 점검 회의를 통해 범정부적으로 상황을 공유했다”며 “오후 3시에는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여는 등 상시 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한 달 전부터 솔레이마니 사망 1주기를 전후해 선박 나포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가 나왔는데 선제적 대응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초 원유대금 동결에 대한 보복으로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 나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중동 주재 공관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이란 내부 상황 등을 고려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인근 공관에 지속적으로 알리며 우리 국민과 선박 보호를 위한 각별한 안전 관리를 당부해 왔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 최지선 기자
#미국#이란#nsc#적극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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