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주가 공개석상에서 사라지자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배후에 장기집권을 굳히려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대결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중국 경제 발전과 개혁의 아이콘’ 마윈(馬雲·57) 알리바바 창업주가 지난해 10월 이후 석 달 넘게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중국 금융당국은 ‘전당포 영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강하게 비판한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발언 직후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가 기대됐던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그룹의 홍콩 주식시장 상장이 무산됐다. 알리바바 주가 급락으로 부동의 중국 부호 1위 자리도 내줬다. 이젠 신변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특정 기업인에 대한 손보기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 공산혁명 원로의 후손을 뜻하는 태자당을 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두 세력과 가까운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의미다.
즉, 마윈 사태 이면에는 시 주석의 종신 집권을 둘러싼 파워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중 갈등, 경기 둔화 조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진 등에도 장기 집권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시 주석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대결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 민영기업 옥죄기 가속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게 한 중심에는 민영기업이 있다. 2018년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민영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고용(87%), 수출(88%), 고정자산 투자(65%) 부문에서도 민영기업이 절대적이다. 무엇보다 총자산 순이익률이 평균 8%로 국영기업(4%)보다 2배 높다. 2010년대 이후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이 애플, 구글 등에 맞먹는 세계적 대기업으로 발전하면서 중국인의 자존심을 높여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은 집권 직후인 2013년 11월 공산당 18기 3중 전회에서 “국유 경제가 활력을 찾아야 한다. 국유기업의 영향력을 계속 증대시켜야 한다”며 줄곧 국유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 즉 ‘국진민퇴(國進民退·국영기업의 약진과 민영기업의 후퇴)’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그가 공산당의 오랜 관행이던 권력 분점 원칙을 깨고 1인 장기집권 체제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치적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영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알리바바 외에도 많은 민영기업이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샤오젠화(肖建華·50) 밍톈(明天)그룹 회장을 홍콩의 한 호텔에서 체포했다. 중국에서 ‘신비의 사업가’로 불렸던 그는 복잡한 지분 거래를 통해 금융, 제조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100여 개 상장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재계 거물이었다.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체포된 후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샤오 회장의 종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금융시장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밍톈그룹 산하 9개 금융사를 정부가 직접 경영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2조 위안(약 348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최대 민영보험사인 안방보험의 설립자 우샤오후이(吳小暉·55) 전 회장 또한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체포됐다.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은 그 역시 105억 위안(약 1조7800억 원)의 개인 자산을 모조리 몰수당한 채 현재 복역 중이다. 2004년 안방보험을 설립한 우 전 회장은 회사를 급속도로 성장시켜 ‘중국의 금융굴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특히 그는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덩샤오핑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경제적 성공과 정치적 배경을 두루 갖춘 우 전 회장은 시 주석 측 입장에서는 요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당국은 지난해 9월 안방보험을 아예 청산시켜 버렸다. 에너지 재벌 예젠밍(葉簡明·44) 화신에너지그룹 회장 역시 2018년 비슷한 혐의로 경영권 및 주주 권리를 박탈당했다.
세 사람은 유망한 청년 기업가 시절부터 당국, 국유은행 등의 전폭적 후원으로 급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특히 태자당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국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파다하다. 반중 성향의 홍콩 핑궈(빈果)일보는 시 주석이 셋의 회사 외에도 다롄완다, 하이난항공, 푸싱, 센추리 등 태자당과 연루된 7개 그룹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 상하이방·태자당 권력 다툼
중국의 3대 파벌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장쩌민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 공산혁명 원로의 후손을 뜻하는 태자당이다. 혁명 원로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인 시 주석은 집권 당시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리 총리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동향인 안후이성 출신이고 공청단 경력까지 같다. 시 주석이 현 위치에 오른 것은 두 번 연속 공청단에 주석직을 내줄 수 없다는 상하이방과 태자당의 공동 견제 심리가 작용한 덕이 크다.
시 주석은 집권 후 1인 장기 집권 체제를 강화하며 상하이방과 태자당 출신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견제하고 있다. 이에 과거 한배를 탔지만 척을 진 상하이방과 태자당 역시 ‘누구 덕에 국가주석에 올랐는지 잊었느냐’며 상당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청년 시절을 상하이에서 보낸 장 전 주석은 상하이방 대부 노릇을 하며 아직도 막후에서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마윈은 장 전 주석의 장남 장몐헝(江綿恒·70)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장몐헝은 1990,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좌장 노릇을 했다. 최고 권력자를 부친으로 둔 데다 본인 또한 전기공학 박사 출신이어서 많은 IT 기업가와 돈독한 교분을 유지했다. 2014년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할 때 공개한 주주 명단에도 장 전 주석의 측근이 대거 포함됐다.
태자당 분파인 ‘훙얼다이(紅二代)’, 즉 혁명 원로 2세 집단에는 노골적으로 시 주석을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표적 인물이 지난해 3월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에서 은폐로 일관하고 있다며 시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에 비유했다가 체포돼 18년형을 받은 런즈창(任志强·70) 전 화위안(華遠)그룹 회장이다.
몇 년 전까지 공산당 이념을 가르치는 중앙당교(中央黨校) 교수를 지내다 시 주석 비판 때문에 미국으로 도피한 여성 학자 차이샤(蔡霞·69)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 강연에서 “시 주석을 바꾸자는 것이 공산당 내 보편적 생각”이라며 시 주석 퇴진을 주장하다 중국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시 주석이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공산 혁명의 순수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현직 국가주석과 대립하면서 수세에 몰렸지만 두 세력은 사회 전반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 주석 또한 장기집권 장애물인 두 세력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이들과 가까운 민영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붉은 자본주의(Red Capitalism)’의 민낯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 미중 갈등, 코로나19가 명분
시 주석이 권력 기반 강화만을 위해 민영기업 때리기에 나섰다면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상당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명분을 더해준 것이 바로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사태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0일 출범할 조 바이든 신임 미국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를 이어갈 뜻을 밝히고 있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쉬 가라앉지 않으면서 지도부는 중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국유기업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금방 끝날 문제가 아니므로 국유기업을 앞세워 ‘자립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국이 최근 ‘쌍순환 전략’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수와 수출을 모두 증가시켜 미국의 경제 공세에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쌍순환’을 내세웠지만 미국의 규제로 어려워진 수출 대신 사실상 내수로 성장을 이끌겠다는 속내가 뚜렷하다. 내수 확대를 통한 성장을 단행하려면 민간기업보다는 사실상 정부 조직이나 다름없는 국유기업이 편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마윈 사태에서 보듯 ‘머리 커진 민간 기업가는 못 믿겠다’는 생각이 지도부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민영기업이 승승장구하더라도 결국 정치권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국유기업의 부실이 상당하다는 데 있다. 2019년 국유기업은 총 1조5000억 위안(약 257조 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이익률이 0.7%에 불과했다. 국영 철강사 바오우(寶武)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한 해 전보다 42%나 줄었는데도 공산당으로부터 “가난한 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빈곤 해소는 입버릇처럼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한 사회)’을 언급하는 시 주석의 최우선 과제다. 이윤 추구보다 권력자의 정책 목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이 피 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리 만무하다.
○ 국유기업 부실 문제 심각
이미 일부 국유기업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반도체기업 칭화유니그룹이 채권 원금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회사 측은 채권단에 만기 연장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용평가사 중국청신은 즉시 등급을 ‘AA’에서 ‘BBB’로 낮췄다. 급기야 당국은 자오웨이궈(趙偉國·54) 창업자 겸 회장이 있는데도 룽다웨이 공산당 서기를 보내 두 사람을 공동 회장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실제 경영은 룽 서기가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민간기업에 비해 의사결정 속도와 혁신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국유기업 위주의 성장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이냐는 의문도 상당하다. 세계 각국 경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내수 위주 성장이 일종의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장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미국에 맞서기 위한 구심점으로 국유기업을 내세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치열하게 싸워 본 중국 정부가 ‘타격은 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의미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수뇌부 역시 제2의 알리바바, 텐센트가 나와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국유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을 펴더라도 디지털 개혁개방 노선은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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