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식당 문 닫았는데 평가를?”…‘미슐랭 가이드’ 신뢰성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4일 16시 52분


지난해 10월 30일 시작된 코로나19 봉쇄령으로 3개월째 영업이 중지된 프랑스 파리 시내 레스토랑 모습. 식당 안으로는 야외테라스에 놓았던 테이블과 의자가 먼지가 낀 채 쌓여있다.
지난해 10월 30일 시작된 코로나19 봉쇄령으로 3개월째 영업이 중지된 프랑스 파리 시내 레스토랑 모습. 식당 안으로는 야외테라스에 놓았던 테이블과 의자가 먼지가 낀 채 쌓여있다.
“근 1년 간 제대로 레스토랑 운영을 못했는데… 제대로 평가했을까요? 셰프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에요.”

13일 오후 프랑스 파리 15구의 한 식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조치로 문을 닫은 채 입구에서 포장영업 만 하던 호베흐 씨가 말했다.

전 세계 ‘맛있는 식당’의 지침서로 통하는 미슐랭 가이드가 이달 18일 별점을 받은 식당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령으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내 상당수 식당이 문을 닫아온 기간이 길어져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 측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날 파리 에펠탑 앞에서 ‘미슐랭 가이드 2021’ 발표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청중 없이 유튜브, 페이스북 등으로 중계되는 디지털 행사가 될 것이라고 르푸앙 등 현지언론은 전했다.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 사에서 발행하는 식당 안내서로, 매년 별 1~3개를 부여한 레스토랑 명단을 공개한다. 별이 1개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2개는 요리가 뛰어나 찾아가볼만한 식당, 3개는 장거리 여행으로 찾아갈 만한 특출난 식당을 뜻한다. 평가단은 신분을 감추고 식당을 찾아가 재료, 풍미, 요리법, 가격, 창의성 등을 5개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전 세계에서 ‘맛집의 기준’으로 통하면서 별 부여와 별의 수에 따라 레스토랑이 운명이 바뀌어 요식업계에서는 ‘미슐랭 임펙트’란 용어까지 나올 정도다. 미슐랭 별을 획득하는 순간 예약이 몰리고 매출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미슐랭 별을 받자마자 매출이 최소 100% 이상 늘어난다고 여러 스타 셰프들이 밝혀왔다.

문제는 지난 1년 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마다 봉쇄조치가 내려져 식당영업이 장기간 중단된 점이다. 프랑스 만 해도 지난해 3~5월 1차 확산 당시를 비롯해 2차 확산기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현재까지 전국 모든 식당의 실내영업이 금지된 상태다.

평가단이 식당을 다니며 평가할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해 올해는 신뢰할만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요리사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파리 7구에서 활동하는 요리사 빠스칼 씨는 기자에게 “재정적 어려움은 알지만 객관적 평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파리 근교 지베르니 지역에 가게를 연 요리사 플룸 씨는 “봉쇄조치로 1년 중 5개월 밖에 식당 운영을 못했지만, 별을 받는 스타 세프들이 많이 나와 각광을 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봉쇄 조치로 식당 운영 자체가 어려워 ‘요리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식당들도 파리 일대에 많았다.

객관적 평가가 이뤄질 상황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찬반 논란 속 미슐랭 가이드 트위터에는 “장기간 식당 문을 닫았는데, 어떻게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나”는 비난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미슐랭 가이드 측이 해명에 나섰다. 그웬달 뿔레넥 국제 디렉터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식당과 요식업이 너무 어려웠다”며 “오히려 명단을 발표해, 식당을 홍보하고 돕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명했다. 또 봉쇄조치 상황에서 별 부여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특별조직을 구성해 평가를 해왔다고 미슐랭 가이드 측은 설명했다.

자칫 이번 발표로 미슐랭 가이드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2~3년 간 미슐랭 별 부여를 두고 식당과 요리사들 사이에서 “정확한 기준을 밝히라”며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실제 2019년 11월에는 ‘라 메종 데 부아’란 프랑스 식당이 별 등급이 3개에서 2개로 떨어지자, “평가 기준을 공개하라”며 미슐랭 가이드 측에 소송을 걸었다. 법정에서 요리사와 미슐랭 측이 평가기준이었던 치즈의 품질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슐랭 별을 잃고 우울증을 빠지는 요리사들이 늘어나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2019년 식당들이 미슐랭 가이드 측으로부터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받은 후 이를 승낙한 회사 만 미슐랭 별을 획득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컸다. 미슐랭 가이드 평가 기준이 프랑스 요리 등 지나치게 서구 스타일의 요리에만 치우쳐 전 세계 요리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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