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5시간 만에 15건의 행정명령을 포함한 긴급조치 17건에 서명하면서 첫날부터 국정 운영에 속도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대응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등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취임 첫날부터 ‘트럼프의 유산’을 지우고 바이든 행정부의 색깔을 드러내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사에서 어떤 대통령보다 더 빠르게 전임자의 유산을 해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은 의회 승인이나 법안 통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바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로 긴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쓰는 통치 수단이다. 팬데믹과 사회 분열로 위기에 빠져 있는 미국을 정상화하는 일이 그만큼 급하다고 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오후 5시경(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각종 행정명령 서류에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봤을 때 허비할 시간이 없다. 즉시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며 “오늘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방침을 철회하기로 했다.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WHO는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면서 이미 WHO의 탈퇴를 공식화한 상태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국제기구의 역할을 무시하고 ‘마이웨이’를 외쳤던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최고의 방역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에게 이번 주 WHO 연례 회의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 이미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파리기후협약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주요국들이 맺은 국제조약이다. 이번 조치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연방정부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스크의 중요성을 경시해 코로나19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방역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짜고 팬데믹을 조기에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역점사업이었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중단시켰고, 이슬람 일부 국가를 상대로 내려진 입국금지 조치도 해제했다. 이민자를 포용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 분야에선 세입자 강제 퇴거와 학자금 대출 이자를 유예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단합을 강조했지만, 정작 집무실에서의 첫 행보는 적과의 타협이나 협조가 아닌 트럼프의 의제를 빨리 지우는 일이었다”고 분석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22일에는 경제 지원, 다음 주에는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와 이민자 이슈에 관한 내용 등 이달 말까지 긴급조치를 쏟아낼 계획이다. 백악관은 20일 홈페이지에 △코로나19 △기후변화 △인종 평등 △경제 △보건 △이민자 △글로벌 지위 회복 등 7개 항목을 우선순위로 제시하면서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장관 지명자들에 대한 상원 인준이 늦어지고 있는 데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들의 역할을 한시적으로 대신할 20여 명의 기관장도 20일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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