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위안부 피해배상 판결 시정하라”… 韓 “상처치유 노력 보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5일 03시 00분


[한일관계]
법원판결, 日 항소 안해 23일 확정… 모테기 “국제법위반 유감” 새벽 담화
정부 “피해 당사자들 권한” 거부… 文대통령 ‘곤혹’ 신년회견 발언에
日외교가 “자산압류 없을것” 전망… 양국 확전 피하며 교착 이어질듯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자 일본 정부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달 8일 내려진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 기간인 2주 내에 항소하지 않아 23일 0시부로 확정됐다. 일본 정부의 시정 요구에 대해 외교부는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권리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판결 확정 시점인 23일 0시에 맞춰 담화를 내고 “(이 판결은)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즉각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국제법상 특정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권 아래 놓이지 않고,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청구권·경제협력협정으로 해결됐으며,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해결됐다는 점을 또다시 강조했다.

23일 외교부는 모테기 외상 담화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상의하며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일본 측 또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국제인권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측 요구를 한국 정부가 거부했지만 양국 모두 확전을 피하려는 모습도 감지된다. 모테기 외상은 담화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대 법학과 교수는 24일 “한국이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보복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다”며 “양국 관계는 더 이상 악화도, 개선도 되지 않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도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실행되면 일본 정부가 강한 대항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23일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기자회견에서 법원 판결에 대해 “조금 곤혹스럽다”고 밝히면서 일본 정부 자산이 압류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본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3일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압류는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외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외교부 측은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압류는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들어본 바 없는 내용”이라고 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요미우리신문에 “법에 의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자세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ICJ 제소 의향을 내비쳤다. 아사히신문도 “당분간 ICJ 제소 카드를 쥐고 있으면서 한국 측의 대응을 계속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등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은 외국 공관 불가침 원칙을 정한 빈 협약으로 인해 압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원고 측 변호인 김강원 변호사는 “국내에 있는 (공관 자산 외) 일본 정부 자산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이 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권오혁 기자
#일본#위안부#피해배상#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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