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집행위원장, WEF 화상 연설… “디지털세계 어두운 면 함께 맞서야”
정보 독과점-가짜뉴스 등 피해 강조
대서양 동맹 복원 나선 바이든… 자국 기업 이익도 외면 못해 난감
옐런은 “디지털세 열린마음 검토”
“디지털 세계의 어두운 면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치자.”
유럽연합(EU) 행정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63)은 26일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 어젠다 화상 연설에서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말하며 미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문제는 EU가 겨냥한 거대 IT 기업들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대서양 동맹 복원’에 나섰지만 EU가 미국 IT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여기에 동참까지 요구하면서 미국과 EU 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자유와 공정 경쟁뿐 아니라 민주주의, 안보, 정보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거대 IT 기업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대 IT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규정을 함께 만들어 IT 기업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자”고 요구했다. 그가 언급한 ‘디지털 세계의 어두운 면’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대형 IT 기업들이 다수의 이용자를 토대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중 정보의 불균형, 가짜 뉴스 확산, 시장 독과점 등 부정적 영역이라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특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IT 기업들이 알고리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알고리즘은 인공지능(AI)이 이용자의 관심사, 성향 등을 분석해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알고리즘이 이용자들에게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5일 IT 기업의 반독점 행위 처벌을 강화하는 ‘디지털 시장법’과 ‘디지털 서비스법’ 초안을 공개했다. 연매출 65억 유로 이상, 이용자 4500만 명 이상, EU 3개국 이상에서 쓰이는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을 ‘디지털 게이트키퍼(문지기)’로 지정해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용자를 담보로 각국의 선거, 정책 등에 의도적으로 특정 정보를 퍼뜨려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고, 불공정한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한 취지다.
EU 주요 국가들은 IT 기업들이 EU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매기는 ‘디지털세(Digital Tax)’도 이미 도입했다. 디지털세는 구글을 포함해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미국 주요 IT 기업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 ‘GAFA세’로 불린다. 디지털세 도입 배경은 이들 대형 IT 기업들이 유럽에서 돈은 벌지만 세금은 내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나왔다.
2019년 7월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한 프랑스에서는 미국과의 관세 전쟁이 시작된 상태다. 프랑스가 미국 IT 기업에 관세를 부과할 것을 예고하자 미 무역대표부(USTR)는 화장품, 핸드백 등 프랑스의 주요 수출품에 추가 관세를 예고해 맞불을 놨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IT 기업의 규제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해도 EU의 요구에 밀려 자국 기업을 챙기지 않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EU는 “바이든 취임 후 2개월 안에 디지털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며 올해 중반까지 타결이 안 될 경우 세금 부과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IT 기업 규제는 대서양 동맹 회복을 구축하려는 바이든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인 재닛 옐런이 23일 “디지털세 도입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하는 글로벌 세제 개혁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양측이 적절한 선에서 IT 기업에 대한 규제 수위를 조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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