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연대의식으로 극복해야… 자발성 기초한 새 방역모델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9일 03시 00분


[2021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
〈7·끝〉 ‘감염병 전문가’ 김용 前세계은행 총재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을 지낸 감염병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변이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19 박멸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팬데믹이 공동체 의식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줌 화면 캡처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을 지낸 감염병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변이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19 박멸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팬데믹이 공동체 의식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줌 화면 캡처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을 지낸 세계적인 감염병 전문가다. 개발도상국의 결핵 퇴치 등 국제 의료구호 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지난해 12월 29일 그를 줌 화면을 통해 인터뷰했다.

그는 “비록 백신이 나왔지만 우리는 한동안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할 것”이라며 “치명적이고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다시 생길 가능성에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팬데믹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질 수 있다”며 실종된 미국의 리더십을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총재는 특히 외환위기 시절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언급하며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도 공동체 의식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2년 아시아계 최초로 세계은행 총재를 맡아 연임에 성공한 그는 2019년 2월 임기를 3년 이상 남긴 채 돌연 사임한 뒤 지금은 개도국 인프라에 투자하는 민간 기업(뉴욕 소재)에서 일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1년 전에 코로나19가 이처럼 무서운 바이러스가 될 줄 알았나.

“나는 감염병 전문의로 훈련을 받았고 1918년 스페인 독감 때와 같은 일이 생길 가능성을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에도 자주 참여해 왔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선진국 국민들은 결핵, 에이즈 같은 감염병의 재앙을 겪지 않았다. 또 이런 문제가 단지 가난한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이런 재앙을 그동안 겪지 않은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다.”

―이 사태는 언제 끝나나.

“앤서니 파우치(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는 예전에는 국민의 70%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85∼90%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맞는다고 본다. 백신을 우리만 맞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90%가 백신을 맞았다고 치자.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계속 전파되고 우리가 국경을 완전히 닫을 수 없는 한 우리는 여전히 위험을 안게 된다. 결국 유일한 방법은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백신을 맞는 것인데, 그러면 접종 대상이 75억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대규모 접종은 인류 역사에서 해본 적이 없다.”

―그럼 백신을 모두 맞힌다면 문제는 해결되나.

“변이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문제가 있다. 바이러스는 항상 변이를 일으킨다. 그중 일부 변이는 확산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이며 백신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내 주변의 전문가들은 지금 백신이 현재 퍼지고 있는 변이에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바이러스가 너무 많이 퍼진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새로운 변이가 생겨날 확률이 높다. 코로나19를 박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감염병 퇴치가 그렇게 힘든 일인가.


“지금까지 완전히 박멸된 감염병은 천연두뿐이다. 그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소아마비도 상당한 진전을 거두긴 했지만 아직 박멸했다고는 할 수 없다. 수십 년간 수십억 달러를 들이고도 말이다. 에이즈는 40년째 백신도 없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대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이 특이한 바이러스는 전파가 매우 쉽게 일어난다는 특성까지 갖고 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상으로의 복귀가 한동안 어렵다는 뜻으로 들린다.

“우리는 한동안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2021년 말이면 좀 더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 우선 백신을 안 맞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백신 만드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백신을 잘 만든다 해도 공중보건 수칙은 앞으로 항상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뉴 노멀’을 얘기한다. 나도 완전히 이전처럼 돌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선 서로 소통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에서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지금 당신과 나는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지만 이렇게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니 얼마나 쉬운가. 굳이 차를 몰고 사람을 만나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집단 면역을 이뤄 서로 만남이 가능해진다 해도 앞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할 것이다. 불필요한 회의도 줄어들 것이다. 나도 가족이 사는 집 근처에 작은 개인용 오피스를 만들어 놨다. 화상회의 등 일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구비돼 있다.”

―개도국의 문제도 심각하다.

“보통 팬데믹은 개도국에만 충격을 줬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은 선진국이 개도국을 돕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선진국도 고통을 받고 있어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예전만큼 충분치가 않다. 국제기구들이 이들의 채무 상환을 유예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이들 국가에는 에너지 수송 통신 등 인프라 지원도 필요하다. 부자 나라들은 빚을 내서(재정을 일으켜) 경기 부양을 하며 잘 버틸 수 있었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그러지 못했다. 국가 간, 그리고 나라 안에서의 빈부격차가 커질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에 미국의 책임이 있나.

“미국의 리더십 실종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 가령 천연두와 싸울 때는 당시 250여 명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직원들이 WHO에 파견근무를 했다. 이들이 천연두 박멸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 에볼라 사태 때도 세계은행, WHO, CDC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에볼라 확산을 막았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미국이 WHO에서 탈퇴하기로 한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100년 만의 팬데믹 상황에서 WHO를 떠날 수 있나. 나는 1월 20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WHO에 복귀하기를 바란다.”(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20일 WHO 탈퇴를 철회했다.)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미국의 잘못된 대응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미국보다는 대처를 잘했을 것이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는 단지 확진자가 많을 뿐 아니라 지도자들이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전에 존스홉킨스대가 팬데믹에 가장 준비돼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분석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오히려 최악이 됐다.”

―팬데믹 때문에 더 통제된 사회가 온다는 경고가 있다.

“바이러스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렵고 진정한 헌신과 협력이 필요하다. 나는 항상 한국의 외환위기를 이야기한다. 당시 한국 사람들이 금과 은을 기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보물을 기꺼이 포기했다. 이런 연대의식이 지금 필요하다. 중국이 바이러스를 잘 통제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방식이 미국 유럽 한국에 통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떤 모델이 필요한가.

“민주적이고, 자발적이고, 시민의식으로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 지침을 잘 따르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지금은 통제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가만히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회 연대를 통해 공중보건과 백신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는 민주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바이러스 하나가 세계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려면 뭘 해야 하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언젠가 코로나는 마술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정말 위험한 ‘마술적 사고’다. 마찬가지로 백신이 나오면 바이러스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마술적 사고다.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정책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책을 짜야 한다. 미국에는 자원봉사 소방관이라는 제도가 있다. 평소엔 현업에 종사하면서 소방교육을 받다가 큰불이 나면 모두가 소방관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게 공중보건에도 필요하다. 평소 훈련을 받은 국민들이 큰 감염병이 발생하면 공중보건 일꾼이 되는 것이다. 메르스같이 치명적이고 코로나19같이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또 올까?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번 팬데믹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연대의식이나 동료애, 책임감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중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은 매년 학생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은 항상 ‘내 권리’를 주장한다. 좋다. 너희들은 권리가 있고 우리도 네 권리를 존중하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너의 권리는 끝난다는 점을 잊지 말라.”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마스크를 안 쓸 권리가 있다. 맞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권리까지는 갖고 있지 않다. 미국 대통령(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삼은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당신이 우리 이웃과 사회, 국가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1959년 서울 출생
△1964년 미국 아이오와주로 이민
△1982년 브라운대 생물학과 졸업
△1987년 의료구호단체 ‘파트너스인헬스’ 공동 설립
△1991년 하버드대 의학 박사
△1993년 하버드대 인류학 박사
△2003∼2005년 세계보건기구 에이즈 담당 국장
△2009∼2012년 다트머스대 총장
△2012∼2019년 세계은행 총재
△2019년∼ 글로벌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 부회장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코로나19#팬데믹#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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