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독일에 주둔한 미군의 감축 계획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 작업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유산을 뒤집는 행보다.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전 세계 미군 배치에 대한 리뷰를 할 때까지 주독미군 감축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군대를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 우선순위에 잘 부합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의 국방비 지출 규모에 불만을 품고 주독미군 중 약 3분의 1을 철군 또는 재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에 바로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때 줄곧 제기됐던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도 낮아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는 미국 대외 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왔다”며 미국이 일방주의 외교 노선을 버리고 국제무대에 복귀했음을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부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이날 국무부 청사를 찾았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CIA)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국방부를 각각 첫 방문 기관으로 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가 추진한 주독미군 감축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함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주한미군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동맹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이번 결정으로 주한미군 감축 우려도 어느 정도 수그러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스틴 장관은 4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전 세계에 배치돼 있는 미군 현황과 자원, 전략 등에 대한 리뷰를 할 것”이라며 “정책 담당 국방차관 대행과 합참의장이 긴밀히 상의해 리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이어 “이 일은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우리는 리뷰를 하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상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토 결과 만에 하나 해외 미군을 철수하거나 재배치할 필요성이 발견되더라도 일방적으로 철수 결정을 내리지 않고 주둔국과 반드시 상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방침은 방위비 분담금을 충분히 내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한국 등 동맹국에 미군 감축을 대놓고 ‘협박’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7월 독일의 국방비 지출이 미흡하다면서 전체 주독미군 3만6000명 중 3분의 1인 1만2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은 독일처럼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미군 감축의 사전 작업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12년 만에 빠졌고, 12월엔 주한·주독미군의 철수를 제한한 의회 국방수권법(NDAA)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임기 막판까지 미군 감축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4일 발표는 전임 행정부의 미군 감축 계획을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이어서 한국으로서는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국무부 청사 연설에서도 “미국이 돌아왔다. 글로벌 문제는 모두 협동해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동맹 중시’ 기조를 이어나가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만 그는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적성 국가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강경 노선을 이날도 이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 사이버공격, 자국민 독살 등 공격적 행동에 미국이 쉽게 나가떨어지는 시기는 지났다는 점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러시아에만 유독 저자세로 대응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조건 없는 석방도 요구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와 지식재산권 절도 등 기존 이슈를 다시 언급하면서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중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인도주의적 대재앙이 된 예멘 전쟁이 끝나야 한다”면서 “미국은 예멘에서 군사작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관련된 무기 판매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전쟁에 뛰어든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부분도 전임 행정부의 유산과 단절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나 이란 핵문제에 대한 언급은 따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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