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선동 혐의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미국 상원의 탄핵 재판이 오는 9일 본격 시작된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재판이 열린 데 이어 두 번째다.
당시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무소속 2명으로 배분된 상원에서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2가지 혐의 모두 무죄 판결이 나면서 탄핵안은 부결됐다. 한 가지 혐의만 제기된 이번 재판에는 공화 50, 민주 50(민주당 성향 무소속 2석 포함)으로 팽팽히 맞서는 상황.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두 번 탄핵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연 상원에서 두 번 살아남는 ‘불사조’가 될지 미 정가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워싱턴에 집중되고 있다.
◇탄핵소추위원단 9명 vs. 변호인단 2명 : 이번 탄핵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을 탄핵소추위원단은 민주당 하원의원 9명으로 구성됐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메리칸대학교 워싱턴법과대학 교수를 지낸 제이미 래스킨 의원(메릴랜드주)이 단장을 맡았다.
위원단은 80쪽에 달하는 두툼한 의견서를 제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를 선동했고, 이 내란 선동 혐의가 연방헌법상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중죄(high crime)라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으로는 검사 출신 브루스 캐스터 변호사와 민·형사 소송 모두에서 노련한 데이비드 쇼언 변호사가 나선다. 앞서 꾸려진 5명의 변호인단이 지난달 말 모두 사임하면서 급하게 신규 선임한 탓인지 변호인단이 제출한 의견서는 14쪽으로 분량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변호인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뒤집기’ 노력에는 잘못이 없으며, 설령 그렇더라도 전직 대통령을 탄핵심판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다.
◇“내란 선동 탄핵 사유” vs.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은 위헌” : 더힐·CNN·VOX뉴스 등을 종합하면 일단 지난 2일 제출된 양측의 의견서는 거의 동시에 제출됐기 때문에 내용상 직접적으로 맞서고 있지는 않지만, 이에 기반해 날선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소추위원단은 Δ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이후 몇 달간 명백한 증거 없이 사기 선거 주장을 한 점 Δ지지자들에게 직접 연설을 통해 “지옥처럼 싸우라”고 말한 점 Δ의회 난입 사태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상원의 개표를 저지하지 않았다고 비난한 점 Δ사태 이후 지지자들을 즉각 저지하지 않은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할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어겼고, 민주적 절차를 공격했으며, 의회를 더럽히고 심지어 국가 안보까지 훼손시켰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의회 난입 사태 직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고 사태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로 맞설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사기 주장은 진실이며, 설령 틀렸더라도 이를 합리적으로 설득할 충분한 증거는 없다는 주장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노력했다는 부분도 부인하는 취지다.
변호인단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퇴임했기 때문에 탄핵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헌법상 탄핵심판은 현직에 있는 연방정부 공직자만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탄핵소추위원단은 이미 의견서에 이를 반박하는 선례를 인용했다.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876년 윌리엄 벨크냅 전쟁장관이 수뢰 혐의로 사임하고도 직후 탄핵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핵심 논리 무너져도…공화당 17표 찬성 설득 쉽지 않을 듯 : 탄핵 결정은 결국 ‘배심원단’ 역할을 하는 상원 100명 가운데 3분의 2인 67명의 찬성표를 받아야 가능하다. 민주당이 우세한 하원에서도 공화당 의원 10명의 찬성표가 주효했는데, 상원에서는 17명의 의원을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탄핵 재판의 배심원단은 정당인들이다. 이번 절차가 다 끝나기도 전에 벌써 공화당 일부 지역은 주(state)당 중앙위원회를 열어 하원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의 불신임안을 상정하는 등 ‘배신자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상원에서 탄핵안 표결을 진행할지를 묻는 절차 투표에서 이미 공화당 의원 50명 중 4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이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재판일을 합의하면서 “하원에서 탄핵안이 전례 없이 짧은 시간내 최소한의 절차만 거쳐 통과됐다”고 지적하고, “상원에서만큼은 충분한 변론 기회를 보장하고 배심원단의 법률적, 헌법적 검토와 사실에 입각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절차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판 시작 전날인 8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재판 전 변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8~11일 중 의회 난입 사태의 증인으로 출석해달라는 위원단의 요청을 거부한 만큼 ‘셀프 변론’ 여부는 미지수다.
종결 시점도 예측이 어렵지만 3주가 걸린 지난해 1차 탄핵 재판 때보다는 짧게 끝날 것 같다고 CNN은 의회 소식통을 인용해 전망했다.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공직 후보 재출마를 막을 길은 없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한편 미국 여론도 여전히 팽팽히 갈리는 듯하다. 퀴니피악대학교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성인 10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오차범위 3%포인트) 결과 응답자의 50%가 찬성(유죄), 45%가 반대(무죄)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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