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미중 간 날 선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통화에서부터 신장과 홍콩, 대만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안들을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국 정책의 기본 방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대로다.
위마오춘(余茂春·미국명 마일스 위)은 트럼프 행정부 대중국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평가받는 중국 전문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의 중국정책 수석 고문을 지내며 대중국 강경책의 기본 틀부터 세부적인 전략, 전술까지 총지휘한 배후 인물로 평가받는다. 국무부의 고위인사들에게서 ‘국보’, ‘중국 백과사전’이라고 불렸던 그의 중국 지식과 분석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워싱턴에서 남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인 그는 최근 워싱턴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 미국의 포용정책 이용했다”
위 연구원은 12일(현지 시간)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과 최고위급 커뮤니케이션을 재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거의 낡은 포용 방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같은 문제에서 중국과의 협력 의사를 밝혔지만 우리가 중국과 협력해야 할 이슈는 기후변화 외에도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무역 불균형, 지식재산권 탈취, 역내 이웃국가들에 대한 위협, 대북 제재 불이행 등이야말로 중국이 진지하게 관여하고 협력해야 할 분야라는 것이다.
위 연구원은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과 대화할 때 ‘공동의 관심사를 이야기하자’면서 막상 근본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역공격하며 논의를 차단해버리는 전략을 사용해왔다”며 “이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보여온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는 언젠가부터 중국과의 관계에서 ‘포용을 위한 포용’에 너무 집착했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포용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이용하거나 갖고 놀려고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중단시켰던 것”이라고 했다. 이후의 대중국 접근은 ‘불신하되 검증하라(distrust but verify)’ 기조로 진행됐다고 한다.
위 연구원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해 7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연설 준비 작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에 있는 닉슨 도서관에서 진행된 이 연설은 1979년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 정식 수교한 이후 미국이 지속적으로 취해왔던 중국 포용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중국을 적대적 경쟁자로 규정하는 새로운 대중국 정책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중국의 위협은 미국만의 문제나 동아시아, 인도태평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직면한 글로벌 도전”이라며 “중국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와 사이버 공간, 해양, 우주 분야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분명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체제를 존중하지 않고 ‘약탈자적 행동(predator behavior)’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중국공산당, 중국인 전체 대표하지 않아”
트럼프 행정부가 퇴임 직전까지 대중 제재를 비롯한 강경조치들을 쏟아낸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겠다고 약속했던 일들을 마무리한 것일 뿐”이라며 “우리가 중국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조치들을 중단했다면 지금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격자들을 단지 좋게 대해준다고 해서 그가 공격을 멈출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며 “지난 50년 중국공산당과 우리 지도자들 간에 수없이 많은 대화와 만찬이 이뤄졌지만 바뀐 게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선출된 권력이 아닌, 맑시스트와 레닌주의 정치 엘리트 집단이 중국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중국공산당과 중국 국민을 별개로 대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에 대해 “현재의 미중 갈등은 미국이라는 제국이 쇠퇴하고 중국이라는 또 다른 제국이 부상하는 데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여전히 강하고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민주주의”라는 게 그가 이를 부인하는 이유다.
그는 미국의 대중 전략이 장기적으로 시 주석의 정권을 교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시진핑 권력을 교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의 문제는 시 주석 개인이 아니라 그런 인물을 만들어내는 중국의 공산당 시스템”이라며 “다른 어떤 중국 지도자가 권력을 잡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중국 출신이면서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는 위 연구원을 향해 중국은 공개적으로 ‘간신’ ‘배신자’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중국 충칭의 모교에 세워진 비석이나 족보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수모도 당했다. 그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 뿐 아니라 가족들도 이메일과 편지 등으로 매우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에 계속 끌려 다니면 안 돼”
한국의 대중 전략에 대해서는 “한국이 추구하는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핵심 원칙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국제사회와 함께 움직이는 큰 그림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특히 한미일 3국 간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 우려와 관련, 그는 “중국이 한국에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미국 또한 중국의 전략적 공급망에 의존해왔지만 더 이상은 이렇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단호한 조치들을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과의 협력에 대해 묻자 그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중국이 그럴 의향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과거 6자회담에서 국제적으로 그럴 듯한 장면만 연출했을 뿐 북한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는 멤버”라며 다자적 접근이 아닌 북-미 양자 협상이 더 효율적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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