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웅’ 뉴욕주지사의 추락…요양시설 사망자수 절반 축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6일 18시 03분


지난해 3~6월 미국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터 같은 뉴욕 상황을 가감 없이 전했던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64)가 주내 요양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수 축소 은폐 의혹으로 정치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일관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대비된다’는 호평을 받으며 민주당 대선후보로도 거론됐지만 이제 주지사 사퇴와 검찰 수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지난해 거의 매일 TV 기자회견을 열며 코로나19와 관련한 투명한 정보공개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현직 정치인으로는 최초로 배우들이 주로 받는 에미상까지 받았었다.

CNN 등에 따르면 쿠오모 주지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우선했어야 했다. 빈 공간이 더 많은 허위 정보를 유포시켰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부터 요양시설 내 코로나19 사망자수를 1만5000명에서 8500명으로 줄였다는 의혹을 받아온 그가 공식석상에서 사망자수 축소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은 처음이다. 8500명은 요양시설 안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 나머지 6500명은 요양시설에 거주하지만 코로나19 증세를 보여 일반 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 곳에서 숨진 사람이다. 그간 뉴욕주는 요양시설 밖에서 숨진 사람을 사망자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만 쿠오모 주지사는 고의적 은폐 논란을 부인하며 ‘의도적 축소’가 아닌 ‘정보공개 지연(delay)’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주의회에서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쿠오모 측은 “주정부의 업무가 많아 제때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곧 제출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전대미문의 비상사태를 맞아 연방정부에 사망자 숫자를 먼저 제공하느라 주의회 보고가 후순위로 밀렸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그의 최측근인 멜리사 드로사 보좌관이 10일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우리가 요양시설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인다고 쓰는 등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했다. 그래서 주의회가 요양시설 사망자 통계를 요구했을 때 응하지 못했다”고 말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사망자 수를 공개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민주당 소속 주지사에 대한 공격 빌미로 삼을 수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논란이 확산되자 주의회와 검찰은 관련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닉 랭워시 뉴욕주 공화당 위원장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증거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쿠오모를 탄핵하고 검찰에 기소해야 한다”고 했다. 주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CNN은 일부 민주당 주의회 의원이 주지사의 각종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의 수사 자체를 연방정부에 맡기자는 지적도 있다. 주검찰은 이미 지난달 “주내 62개 요양시설을 조사한 결과, 주정부가 사망자 수를 절반가량 축소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법조인 출신의 쿠오모 주지사는 2011년 1월 취임했다. 2018년 3선(選)에 성공했고 이번 임기는 2022년 12월 끝난다. 역시 3선 뉴욕주지사인 마리오 쿠오모(1932~2015)의 장남이며 부자(父子)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도 법무장관 물망에 올랐다. 1990~2005년 결혼생활을 하며 세 딸을 둔 전 부인 케리(61)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 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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