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핵합의 조건 준수’와 이란의 ‘제재 해제’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취임 전부터 이란과의 관계 회복을 언급해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외교력을 평가받는 시험대에 섰다.
◇핵합의 어떻게 흘러왔나=이란을 둘러싼 핵합의는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과 독일이 맺은 것이다. 이란이 핵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그 보상으로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해제해주는 것이 합의의 골자다.
다만 이는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대적인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영구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중단하는 새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기존 합의를 탈퇴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미국의 권력이 바뀌면서 이란의 미국을 향한 핵합의 복원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2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미국의 압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필요하다면 우라늄을 순도 60%까지 농축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사회와의 핵합의에서 제한한 순도 3.67%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앞서 이란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됐던 지난해 12월에 미국의 경제제재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우라늄 농축을 더 늘릴 것을 의무화한 법을 통과시켰고 결국 올해 1월 순도 20%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이번에 그 수치를 또 한 번 높인 것이다.
이란 외무부는 최근 핵합의 당사국들이 21일까지(현지시간) 경제제재를 풀지 않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골자로 한 추가의정서 이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20일부터 21일까지 이란을 방문, 자발적 투명성 조치(불시 검문 허용)는 중단하더라도 3개월간 핵시설 방문은 허용하도록 하는 잠정 합의를 맺어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을 잠시 진정시켜둔 상태다.
◇EU 나섰지만 논의 진전은 미지수=이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탈퇴한 만큼 조건없는 복귀를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란이 기존 협정 의무를 준수해야만 경제제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앞으로는 이란의 미사일 개발 문제도 함께 다루는 새 협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나오고 있다.
결국에는 경제제재 완화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하는 이란이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 방위 재단(FDD) 수석 고문인 리처드 골드버그는 “이란은 돈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마지막은 2017년이었다. 골드버그는 거듭 “이란은 분명히 돈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제재완화가 필요하며 제재완화를 포함하는 일종의 회담으로 위기를 몰아내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핵합의를 의미있게 여기고 있는 유럽연합(EU)이 중재자로 나서면서 이번 사안이 실질적으로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앞서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핵합의 문제에 대해 비공식 회담을 제안했고 이란은 이에 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또한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핵합의를 확대·강화시키는 한편 이란의 불안정한 행위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확산 등 우려되는 다른 현안도 다루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의의 진전이 이뤄지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적잖다. 이란에서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대화 복귀 자체는 의미가 없다는 등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미국 하원에서도 친(親) 이스라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원안 합의 복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중동 내 이란의 적국들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EU)과 같은 나라들과의 협상도 또 하나의 과제다.
◇북핵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듯=한편 미국과 이란 간 핵합의 문제는 북한 핵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선 더욱 눈길을 모으는 사안이다.
블링컨 장관은 22일 군축회의에서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불법 대량 살상 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미국의 동맹국들과 먼저 힘을 규합한 뒤 북한 문제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때 추진했던 북미정상 중심의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동맹국들의 의견을 좀 더 면밀히 듣고 대북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으로의 북미협상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번 회의에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NPT)를 위반하고 나중엔 탈퇴한데다 금지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와시오 에이치로 일본 외무성 부상 또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가 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