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7일(현지 시간) 타결한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지속되는 다년 계약으로, 첫해인 올해 방위비를 전년 대비 13%대로 인상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9월부터 1년 반 동안 공전했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속전속결로 해결되자 동맹 복원의 걸림돌을 빨리 제거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대북 공조를 서두르려는 문재인 정부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시절 양국의 이견으로 협정 공백 상태였던 지난해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분담금은 전년도인 2019년 수준(1조389억 원)으로 동결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대사는 이날 귀국길에 오르면서 국방비의 의무적 인상이나 미국산 특정 무기 구매 등은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양국은 이날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 국무부는 “합의안은 한국 기여금의 의미 있는 증가를 포함한다”고 했다. 양국이 올해 방위비를 13%대로 올리기로 정식 협정을 체결하면 2002년 25.7%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인상을 하게 된다. 인상액은 약 1조1740억 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애초 트럼프 전 대통령이 1년 단위 계약을 주장하면서 요구했던 50억 달러(약 5조6700억 원)보다는 훨씬 적지만 예년에 비해 인상 폭이 크다. 2019년 1년 계약으로 체결된 10차 협정의 인상액은 전년 대비 8.2%였다. 지난해 방위비 동결과 다년 계약은 우리 측 의사가 반영됐지만 인상액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딱히 많이 양보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
큰 인상 폭에도 양국이 비교적 빠르게 협상을 타결한 데는 ‘트럼프 효과’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에 13% 인상을 수용 가능한 최고치로 제시해놓은 상태라 바이든 행정부에 이보다 더 내리라고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협상 막판에 바이든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국내의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방위비에서 더 양보하면 공화당을 설득하기 어렵다’며 태도가 강경해졌다”고 전했다.
첫해 이후 마지막 해까지 4년간 연간 인상률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20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부하기 전 한미 실무협상팀이 그해 4월 합의한 안은 ‘첫해 13% 인상한 뒤 4년간 매년 7∼8% 상승률을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막판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가 강경해지면서 2∼5년 차 인상률을 둘러싸고 양측이 줄다리기를 벌였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번 주에 타결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대외 발표와 가서명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17, 18일로 추진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때 양국의 정식 서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요구를 ‘동맹 갈취’라고 비판해온 만큼 동맹 복원을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합리적인 수준으로 합의했음을 강조하면서 동맹국 역할을 다하라는 ‘청구서’를 내밀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미 국무부는 타결 소식을 전하며 “한미동맹이 동북아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 번영의 핵심축(linchpin)임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또 “이번 합의는 안보와 번영을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의 민주주의 동맹들을 재활성화하고 현대화하려는 약속을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방위비 타결 의미를 설명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민주주의 동맹’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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