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레스트 검프”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ㅠㅠ”
의회 난입 주모자들 변명도 각양각색
공판을 앞둔 미국 의회 난입 사태 주모자들이 앞 다퉈 참회의 눈물을 보이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세 좋게 의사당에 밀고 들어가 아수라장을 만들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인데요. 국가 체제 전복, 폭력 선동, 연방 기물 파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유죄가 확정될 경우 감방에서 최고 20년을 보내야 합니다. 이들은 “우리를 호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습니다.
의회 난입 사태로 기소된 사람은 300여명에 이릅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음모론의 주술사(큐어넌의 샤먼)’로 불리는 남성. 대표적 극우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의 신봉자로 뿔이 달린 털모자에 얼굴에 성조기 무늬 페인트칠을 하고 등장해 시위를 주도했죠. 제이콥 챈슬리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상원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가 준비해온 트럼프 찬양 시를 읊어 ‘주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곧바로 체포된 챈슬리는 최근 비좁은 감방에서 TV 시사프로그램 ‘60분’과 가진 줌(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을 ‘포레스트 검프’에 비교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들과 악수를 한 포레스트 검프처럼 자신도 “순수한 마음으로 트럼프의 ‘초대’를 받고 의회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항변하죠. ‘60분’ 진행자가 “그래도 신성한 본회의장를 무단 점거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한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 아니냐”고 묻자, “그건 모르는 말씀”이라며 “나의 행동은 신성한 주술 의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폭력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진정시키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의식이었다는 겁니다. 한술 더 떠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할 때 나를 사면시켜 주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습니다. 방송 뒤 ‘60분’ 게시판에는 “(챈슬리의 변명은) 코미디 급” “왜 저런 범죄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챈슬리는 호의적인 여론을 얻기 위해 ‘60’분 인터뷰를 했겠지만 오히려 그가 보석 허가를 받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수감 상태의 피의자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려면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챈슬리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셀러브리티급’이다보니 담당 변호인과 화상 접견하는 것처럼 꾸며 ‘60분’ 인터뷰에 나섰기 때문이죠. 담당 판사는 “인터뷰 허가 절차를 무시했다”며 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것이 취미인 선량한 시민”이라며 챈슬러에게 평화주의자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판사로부터 ‘60분’ 인터뷰 건 때문에 “속임수”라는 비판만 들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브루노 큐아라는 18세 소년입니다. 기소된 300명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여서 주목 받았죠. 큐아는 챈슬리와 마찬가지로 본회의장 침입자 중 한 명입니다. 당시 시위 참가자는 본회의장 침입 여부에 따라 죄의 경중이 크게 달라집니다. 복도를 몰려다니거나 의원 집무실에 들어간 것 보다 의사진행이라는 고유의 업무를 방해한 죄목이 따라붙기 때문이죠. 큐아는 본회의장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비디오 판독으로 밝혀지면서 폭력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5월 재판을 앞두고 1차 보석허가 신청을 거부당한 큐아는 담당 판사에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죠. 그는 편지에서 “체포된 뒤 20일간 독방 생활을 하면서 참회했다”며 “부모님과 함께 차분하게 재판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검찰 측은 “부모에게 돌아가면 문제를 키우는 꼴”이라고 반격하고 나섰습니다.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아들을 워싱턴까지 데려다준 장본인이 바로 부모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큐아가 의회 난입 사태 후에도 소셜미디어에 선동 메시지를 올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참회의 진실성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차례 올린 소셜미디어 메시지에서 그는 “우리는 미국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시궁창의 쥐들을 공격한 것”이라며 “쥐들을 몰아넣고 몰살시켜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밖에 의회 난입 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에 들어가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놔 유명해진 총기옹호 단체 회장 리처드 바넷은 최근 보석허가 심리에서 “나보다 죄가 더 중한 사람들도 다 허가를 받는데 왜 나에게는 내주지 않느냐”며 재판장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다수 참가자들과는 달리 반성의 기미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 난입자들의 사회심리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왜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했는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죠.
전문가들은 이들의 공통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들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기록 추적이 가능한 125명의 재무상태를 조사한 결과 60%가 파산 신청, 주택 퇴거, 압류, 4만 달러 이상의 세금 미납 등의 전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파산의 경우 미국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은 18%가 신청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참가자 4명 중 1명꼴로 과거 채무 불이행으로 소송을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선거를 사기 당했다” “미국의 미래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불만 가득한 레토릭에 설득당하기 쉽다는 것이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모두 폭력 시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적인 사과(public apology)’에 관대한 것이 미국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의 참회 퍼레이드에 동정의 눈길 대신 “충분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여론이 훨씬 더 우세합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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